인간의 본성이 착한가 아니면 악한가를 둘러싼 논쟁은 수 천 년째 계속돼 오고 있는 철학적 주제이지만 우리 안에 측은지심 같은 연민의 심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 인류는 서로를 돕는 이타주의를 통해 생존해 왔다는 진화론적 설명도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신세계로 건너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상부상조의 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린 미국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희생해 다른 이들을 돕는 ‘자선과 봉사의 생활화’가 가장 두드러진 국가이다. 미국인들이 기부하는 돈은 매년 무려 3,000억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3분의1이 종교기관으로 가고 나머지는 세속적인 기관들에 전달된다.
미국인 가구 중 70% 이상이 자선을 하며 1인당 자선액수는 프랑스나 독일 같은 다른 선진국의 몇 배에 달한다. 이처럼 아직까지도 미국은 어느 나라들보다 선의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부도덕한 자선기관들이다.
얼마 전 탬파베이 타임스가 보도한 자선기관 실태는 충격적이다. 이 신문은 연방국세청 자료를 이용, 전문 모금업체를 고용하고 있는 6,000개 자선기관의 지출내역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정밀 분석했다. 그랬더니 온갖 좋은 명분을 내세워 막대한 기부를 받아 온 상당수 자선기관들이 본래의 목적과 달리 자신들의 사복을 채우는 데 돈을 지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문이 최악으로 선정한 50개 기관의 실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들 50개 기관이 지난 10년간 거둔 돈은 총 13억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본래 취지에 맞게 지출된 돈은 4%도 되지 않았다.
1,400만달러를 모금한 한 당뇨병 자선기관의 경우 환자를 위해 사용한 돈이 단 1만달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돈은 관계자들의 봉급, 모금 전문기관과 컨설팅 업체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지출됐다.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 업체들은 대개 기관장의 가족이나 친구 소유였다. 이쯤 되면 자선이 아니라, 자선을 빙자한 사기라고 보는 게 옳다.
문제의 자선기관들은 대개가 유명 자선기관들의 이름을 모방한 짝퉁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숨기려 회계장부 조작을 서슴지 않았으며 기부자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도 일삼았다. 일부 자선기관들의 복마전을 파헤친 이 기사를 읽고 나면 선뜻 기부하기가 겁날 정도이다. 그래서 난립하는 자선기관들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선기관이라 할지라도 직원들이 필요하고 이런저런 경상비가 드는 만큼 모은 돈 전부를 자선목적으로만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도가 있는 법. 일단 돈의 35% 이상을 모금하는 데 사용한다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문제기관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기부여부를 결정할 때는 냉정해야 한다. 딱한 사연을 접하거나 좋은 취지의 자선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래서 많은 자선기관들은 아주 정교한 메시지를 준비해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쓴다.
이처럼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뜨거운 가슴에서 비롯되지만 결정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한다. 감정에 따른 기부일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떤 사연이나 호소를 접할 때 일어나는 반응에 따르기보다, 자신이 돕고 싶은 일과 명분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관련 기관들의 평판을 조사한 후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기부하는 선제적 방식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자신의 판단이 미덥지 못하다면 자선기관들을 평가해 주는 사이트인 ‘GiveWell’이나 ‘Charity Navigator’ 같은 사이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행히 한인사회로부터 많은 기부금을 받고 있는 몇몇 자선기관들의 평가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경고이다. 맹목적인 선의는 금물이다. 내 것을 주는 행위가 그저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것만은 아닐 터.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온정과 희망을 주는 결과로 나타나게 하려면 세심한 관심과 관찰이 뒤따라야 한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선한 사람들과, 이들의 선의를 악용하는데 혈안이 된 부도덕한 무리들을 보면 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이 쉽게 마무리 되지 않는지 이해가 간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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