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과 친일, 어느 쪽이 더 나쁜가. 오래 전 한국의 한 논객이 던진 질문이다. 남남 갈등으로 국론이 극심하게 갈렸다. 우파 하면 친미, 친일분자로 공격을 받는다. 그런 정황에서 던져졌던 질문이었다.
한동안은 반공의 시대였다.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라고 할 정도로. 그 반공 이데올로기가 크게 퇴색됐다. 반공 운운하다가는 우파로부터도 수구꼴통으로 몰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여전히 신통력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반일이다. 관련해 한 가지 기묘한 사실을 만나게 된다. 반일이 언제부터인지 좌파의 이데올로기화 되다시피 한 것이다.
일본과의 상생을 추구한다. 그런 정치인은 친일분자로 몰린다. 특히 좌파로부터 격렬한 비난이 쇄도하면서. 반일은 그러므로 준 국가 이데올로기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일은 아무리 외쳐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인 것이다.
그 용어조차 생경하다. 방공식별구역(Air Defence IdentificationZone)- 이 말이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면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다. 일본이 경악했다. 미국은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두려움에 떤다. 한국은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바다 싸움이 하늘 싸움으로 번졌다.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온갖 해설에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보도의 홍수 속에 새삼 눈을 끄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왜 중국이 그 같은 무리수를 두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더 좁혀서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대응반응으로, ‘의외’라는 것이 대체적인 미국 언론의 시각이다.
평화굴기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중국은 그리고 ‘개전의 구실’이 될 수도 있는 무모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도대체 왜. 동아시아에서의 패권국가로 부상하겠다는 야망에서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중국이 패권을 행사하는 새 질서를 만들겠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그 왜에 대한 대체적인 진단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다른 요인도 들었다. 중국의 국내 정치적 요인을 그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시진핑의 현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18기 3중 전회에서 개혁을 공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개혁에 대한 당내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그리고 13억에 이르는 중국 민초들의 불만도 비등점을 향해 나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소극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부정부패에, 살인적인 공해에 분노는 쌓여가고 있다. 이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반일, 그 정도로는 모자란다. 일본증오감을 확산 시키는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다름이 아니다. 경제 개혁과 저급한 수준의 내셔널리즘, 그 둘의 혼합물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미국은 쇠망해 가는 세력이고 중국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후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지배해온 내러티브가 이렇다는 거다. 그 착각증세의 발로가 ‘중국몽’이란 지적과 함께 이 잡지는 21세기의 센카쿠열도는 자칫 ‘20세기 초 사라예보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말도 안 되는 방공식별구역 선포’- 그 배경을 추적해 들어가면서 중국의 내셔널리즘, 특히 반일을 그 돌파구로 한 이데올로기화 한 중국 내셔널리즘의 위험성에 주목한 것이다.
“제일 먼저 나선 것은 미국이다. 그 다음이 한국이다. 그리고 일본이 나섰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선포했다. 이를 무시하고 그 해역 상공에 전투기를 출격시킨 것이다.” 타임지의 보도다. 한국이 미국과 한 배를 탔다. 동맹국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중국과 밀월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 한국이 이어도와 제주도 앞바다 해역도 자국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한 중국의 진짜 얼굴을 마침내 직면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중국과의 밀월이라는 한국몽(韓國夢)을 불러왔을까. 준 이데올로기화 한 반일감정이 혹시 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일본과의 대화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잘못 운을 뗐다가는…. 그래서 원칙만 고집하며 안보현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신기루에 집착한다. 그 것이 한국몽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의 현실은 1900년대 대한제국이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사방에서 음산한 노래가 들려오는데 지도자들이 마냥 넋 놓고 있다면 언젠가는….” 센카쿠열도 해역에서 일고 있는 격랑. 그 거센 파도가 대한해협으로, 또 서해로 몰려들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식이다.
그 타개 방안은 무엇일까. 경직된 반일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국력집결이란 대명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유연한 외교적 접근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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