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커피점에 들렀는데 커피를 거저 받게 되었다면, 어떤 손님이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손님들 커피 값을 모두 내주었다면 …. 그날 하루가 신나지 않았을까? ‘커피 한잔’ 친절에 사람들은 100달러쯤 받은 것처럼 좋아하더라고 딸은 말했다. 브루클린에 사는 딸의 며칠 전 경험이다.
이번 주 초 딸이 셀폰을 잃어버렸다. 11월 초에 최신형으로 바꾼 후 2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 한번은 코스코에서 장을 본 후 짐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또 한번은 어린아이들을 유모차에서 자동차 카시트로 옮겨 앉히는 과정에서, 전화기를 흘린 것이었다.
전화기를 되찾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너무 붐비고 모두 너무 바빠서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냉정한 도시 뉴욕에서, 온라인 매매사이트에 올리면 500달러쯤은 쉽게 받을 물건이 얌전히 주인에게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았다.
결과부터 말하면 딸은 전화기를 두 번 다 찾았다. 한번은 백인 할머니가, 또 한번은 자메이카 액센트가 있는 흑인 남성이 셀폰을 주웠다고 연락을 해왔다(셀폰을 잃어버리면 컴퓨터 앱을 이용해 주운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첫 번째 돌려받았을 때 느낌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마침 양심적인 할머니가 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두 번 연거푸 전화를 돌려받고 나자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세상은 그렇게 각박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처럼 ‘나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전화를 돌려받은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커피를 사러 스타벅스에 들어간 순간 딸은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계산대 앞에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분들 커피를 내가 사고 싶다”고 하자 의아한 표정이던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전화를 어떤 분이 찾아 주었다. 그런 선의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고 설명하자 모두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좋아하더라고 했다. 따로 따로 커피점에 들어섰던 낯선 사람들이 한순간에 서로 서로 연결되며 ‘우리’의 경험을 하는 순간이었다.
커피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딸의 페이스북을 통해 셀폰 에피소드를 알게 된 친구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훈훈해졌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커피 사는 일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선행이 감사라는 감동을 만들고 감동은 다시 선행으로 이어지는 선행의 도미노 현상이 한줄기 일어났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바로 무작위 친절 운동이다.
무작위 친절운동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친절을 베풀자는 캠페인이다. 1990년대 초반 앤 허버트라는 작가가 “무작위로 친절을 베풀고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행하는 연습을 하라”고 촉구한 데서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근 20년 역사를 가진 이 운동은 거창한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일 필요가 없다. 낯선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은 친절을 베풀어 깜짝 놀라는 기쁨을 주자는 것이다. 수퍼마켓 계산대에서 잔돈이 모자라 쩔쩔매는 사람에게 잔돈을 보태 줄 수도 있고, 진열대에 할인쿠폰을 슬쩍 놓아둘 수도 있으며, 시간이 다돼가는 주차 미터기에 동전을 몇 개 넣어줄 수도 있다.
티켓을 받은 줄 알고 헐레벌떡 달려온 자동차 주인이 동전 채워진 미터기를 보고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고마움으로 마음이 따뜻해져서 자신도 다른 사람 미터기에 동전을 넣어주고 나면, 받은 것 못지않게 베푸는 것도 큰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선순환의 경험이다.
세상이 각박한 것은 우리 모두가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빵이 부족하고 세상이 춥다면/ … / 사람들이 너무 작은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지”(‘너무 작은 심장’ 중에서)라고 프랑스 시인 장 루슬로는 썼다. 가슴이 너무 작아 ‘내 가족’ 밖에 품지 못하는 데서 세상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연말은 눈을 들어 가족 울타리 밖을 바라보는 때이다. 가슴을 열고 낯모르는 ‘그들’을 품어 안는 때이다. ‘그들’이 ‘우리’로 느껴진다면 선행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는 선의와 감동의 릴레이가 있어 세상은 이만큼이나마 살만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