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인가… 외딴 섬에 가고 싶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것이 ‘쇠망론’이다. 한 세기 이상 세계 질서를 주도해왔다. 그 미국이 망한다는 미국 쇠망론이 시대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미국뿐이 아니다. 잘 나가던 브릭스(BRICs)국가들의 앞날도 심상치 않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상기후로 지구촌이 심한 몸살을 앓는다. 테러리즘이 여전히 기승을 떨고 있다. 거기다가 동성애문제로 가치관 혼란 상황을 맞고 있다. 말세의 말의 시대가 왔다. 종교계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 와중에서 들려오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신음이다.
인류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최근의 한 연구보고서는 정반대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인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향상됐다. 세계는 계속 번영 중에 있고 인류의 수명은 길어지고 있다. 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문제가 적은 시대가 이 시대다.”이는 네덜란드의 정치학자 비욘 롬보르그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포괄적 연구결과 내린 결론으로 다른 많은 연구보고서들도 유사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전쟁의 경우를 보자. 전쟁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부산물이라는 게 일부의 주장이다. 실상은 그 반대다.
자본주의 민주체제에서 전쟁 발발 율은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무력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예외적이라고 할 정도로 인류는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징기스칸의 정복전쟁으로 13세기 인류의 11%가 죽음을 당했다. 현대의 최대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다. 이 세계대전의 희생자는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2.6%에 불과하다. 그리고 21세기의 첫 10년은 2차 대전 이후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가장 적은 시기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산업화는 각종 재해를 불러온다. 이 역시 잘못된 가설로 드러났다. 1900년 산업화에 따른 공해 등 산업재해 희생자는 세계적으로 연간 550명당 1명, 0.18%였다. 오늘날에는 2500명당 1명, 0.04%로 나타나고 있다. 그 수치가 2050년께에는 0.02%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지고 있다. 영아사망률은 낮아지고 있다. 문맹률은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이 연구보고서가 제시하는 다른 데이터들이다. 이는 선진국에서의 현상만이 아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영양섭취가 호전되고 의약품이 널리 보급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인류는 기아, 질병, 문맹이라는 3대 악(惡)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부작용도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롬보르그의 주장이다.
재정위기, 테러위협 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와 세계화 덕분으로 인류는 최상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여기서 새삼 던져지는 것이 있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이다. 왜 그토록 비관론이 팽배해 있는 것인가.
“한국인은 불행하다.” 갤럽이 전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내린 결론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극히 낮아 97위로 나타났다. 갤럽조사뿐이 아니다. OECD 조사결과도, 또 한국 내 연구조사들도 하나같이 ‘한국인은 불행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인의 1인당 GDP는 30년 만에 20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발전, GDP 성장률과 행복은 특별한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이 현상에서 그 답은 상당부문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사회 특유의 이 집단의식의 보편화, 혹은 세계화적 현상이 그 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굶는 것도 아니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소유하려 든다. 삶의 의미를 다른 데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의 지적이었던가. 현대인의 불행의 원인은 바로 여기서 찾아진다는 것이.
새삼 떠올려지는 것이 감사지수(TQ, Thankful Quotient)란 용어다. ‘나는 불행하다’가 한국인 대다수가 보인 반응이다. 그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상당히 높은 행복지수를 보였다. 무엇이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느끼게 했을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들의 행복지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는 운명을 바꾸는 기적의 통로다. 감사지수를 스스로 한껏 높이는 감사계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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