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좋은 구절들을 뽑아 간단한 단상과 함께 보내주는 한 인터넷 편지에 얼마 전 이런 내용이 배달됐다. “미운 사람이 내는 소리는 시끄럽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는 소리는 즐겁다. 소리가 시끄럽고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이다.” 소리와 사람은 같은데도 내가 그 대상에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하고 반응한다는 얘기다.
편지를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중국 고전인 한비자에 나오는 ‘여도담군’이라는 고사였다. 임금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였다는 뜻이다. 위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한 미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소년은 밤에 몰래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타고 나갔다. 왕의 허락 없이 수레를 훔쳐 타면 두 다리를 자르는 형벌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안 위왕은 소년의 효심이 극진하다며 오히려 상을 내렸다.
또 하루는 소년이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너의 사랑을 알겠다”고 기뻐하며 칭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왕의 사랑이 식고 소년을 꾸짖을 일이 생기자 왕은 과거를 들먹이며 화를 냈다. “이놈은 본래 성품이 좋지 못한 놈이다. 예전에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으며 불경스럽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다”고 비난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것은 똑같은 행위인데도 언제는 상 받을 일이 됐다가, 다른 때는 벌 받을 일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한결같지 못하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은 왜 우리가 종종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지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용어로 이것을 설명한다. 이 단어는 딱 떨어지는 한국어 번역이 쉽지 않은데 ‘대략 어림잡아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정도의 뜻이다.
지난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행동경제학의 거두 대니얼 카너먼의 책에는 포드사의 한 중역 얘기가 나온다. 그가 한 대형 금융회사 최고투자 책임자를 만났는데 이 책임자는 자기가 포드자동차를 좋아해서 이 회사 주식에 집중 투자한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일반 개미투자가도 아니고 거대 금융회사 책임자라면 투자결정의 이유가 이보다는 합리적이어야 함에도 그냥 포드자동차에 대한 애정 때문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었다.
투자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투자하는 이런 심리를 카너먼은 ‘감정 휴리스틱’이라 부른다. 옳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라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감정 휴리스틱은 비단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 전반이 이런 마음의 작용에 의해 움직인다. 감정 휴리스틱에 빠진 위왕은 미소년의 불경과 잘못을 오히려 칭찬받을 행동으로 여겼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정치에서도 감정 휴리스틱의 힘은 절대적이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진심과 진실만 있으면 통할 것이라 여긴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엄중한 진실과 옳고 그름만이 아니다.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말하는 것이기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감정 휴리스틱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박식하고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라도 호감을 주지 못하면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힘들다. 반대로 실상은 천박하고 무지해도, 만들어진 평판과 행운을 잘 활용해 호감도를 높이면 대통령자리까지도 오를 수 있다.
선거에서 패할 때마다 진보는 진실이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답답해 한다. 불통에 오만하기까지 한 ‘문제투성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도무지 50% 밑으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대해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보가 번번이 정치전쟁에서 지는 것은 심리전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의 감정 휴리스틱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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