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줘서 고마워/ 이제부터 잘할게’한국에서 ‘서울 시’라는 시집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시인 하상욱(32) 씨의 시다. 처음 접하면 대개 “이게 시?” 하며 의아해하는 이 시의 제목은 ‘내일’이다. 제목을 듣고 나면 “아, 정말 그렇구나!” 싶어지는 그의 시들은 짧고 톡톡 튀는 맛으로 소셜네트웍 세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 것 같은 ‘내일’, 그래서 이제부터 잘하면 되겠지 싶은 ‘내일’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젊은 시인은 알고 있을까. 인생은 유한하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행진이라는 걸 우리는 머리로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의식의 언저리로 찾아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며, 어제 함께 ‘내일’을 맞았던 가족 친지가 오늘은 함께 ‘내일’을 맞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우리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것, 의식하기 싫어 의식 저편으로 밀쳐두었던 것. 바로 죽음이다.
초강력 태풍이 필리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내일’을 앗아갔다. 2,000을 훌쩍 넘은 사망자 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 지 알 수 없고, 목숨은 건졌으되 목숨보다 귀한 가족을 잃어 ‘내일’이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때로 행복해하고 때로 아파하며 소박하게 이어왔을 어촌의 삶들, 바로 전날까지도 이제부터 잘하면 되리라 했을 희망들에 더 이상 기회는 없었다. 무자비한 태풍은 죽음의 점령군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삶은 유리잔처럼 한순간에 깨어질 수 있는 것, 유한성을 전제로 살아가라는 경고이다.
미국에서 ‘죽음 카페(Death Cafe)’ 라는 모임이 최근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다. 터부시 되어온 ‘죽음’을 전면으로 끌어내 화제로 삼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고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자는 운동이다. 2012년 여름 오하이오에서 첫 모임이 생긴 후 빠르게 퍼져서 지금은 미 전국 40여개 도시에 모임이 만들어졌다.
‘죽음 카페’ 운동은 지난 2004년 스위스의 사회학자인 베르나르 크레타즈 박사가 처음 시작했다. 인류학자이기도 한 그는 현대인들이 죽음과 너무 동떨어져 산다는 데 주목했다. 죽음이 없는 듯 살기 때문에 삶의 방식에도, 죽음에 대한 대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는다. 그 자신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는 신랑신부가 결혼을 하면서 포도주와 치즈를 저장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포도주와 치즈는 부부의 결혼생활과 함께 수십년 숙성된 후 부부가 죽었을 때 장례 식사용으로 쓰인다. 크레타즈의 집 지하실에도 부모의 장례용 포도주가 보관되어 있었고, 그런 환경에서 죽음은 삶의 일부처럼 가까웠다.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카페’는 인기를 끌면서 스위스를 넘어 프랑스, 벨기에로 퍼져나갔고 2011년 영국에 도입된 후 지난해 미국에 전파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죽음 카페’ 참석자들이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면서 관심을 쏟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삶’이다. 삶을 최대한 즐길 것,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줄 것,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할 것,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게 할 것 등이다.
나이 들면서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지루함 때문이다. 수십년 살다보면 주변의 사람도 일도 풍경도 너무 익숙해서 그 진가를 잊어버린다. 감동할 대상에 감동하지 않고 감사할 것에 감사하지 않으면서 삶은 타성에 젖어 무한대처럼 이어진다.
‘죽음’이라는 렌즈로 삶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삶이 당장 내일, 한달 후 혹은 1년 후 끝난다면, 시한부 통보를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초점 안 맞은 카메라 렌즈처럼 뿌옇던 삶에 불현듯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 우선순위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 할 걸!”이라고 한다. 더 많이 사랑할 걸, 좀 더 베풀 걸, 미안하다고 할 걸, 고맙다고 할 걸… 때늦은 후회들이다. ‘내일’이 항상 있을 줄 알고, 이제부터 잘하면 될 줄 알고 미루다보면 결국 때를 놓친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까. 후회 없는 삶은 그 물음에서 시작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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