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7, …10, …70. 이 숫자들은 수를 가리키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수비학(數秘學-numerology)에 따르면 ‘그렇다’가 정답이다. ‘수는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일정한 작용을 할 수 있다’-. 태고시대부터의 믿음이다.
그 수비학적 믿음 체계는 기독교에서도 발견된다. ‘7’은 하나님의 수인 ‘3’(성삼위)과 세상의 수인 ‘4’(봄/여름/가을/겨울, 동/서/남/북)를 더한 것이다. 때문에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이렇게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 ‘7’과 완벽한 하나님의 질서를 나타내는 수 ‘10’을 곱한 것이 ‘70’이다. 성경에서 그러므로 70은 죄로부터의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70년 만에 회복된 것처럼.
이 ‘70’이란 수자의 기독교적 상징을 믿는가.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70’이라는 수자에 일단의 정치학자들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대의 1당 독재체제치고 70년 이상 체제유지에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소련이 붕괴된 해는 1991년이다. 그러니까 볼셰비키 혁명 70주년을 넘긴지 얼마 안 돼 그 명을 다한 것이다. 멕시코의 1당 독재체제인 제도혁명당(PRI)이 정권을 잡은 해는 1929년이다. 그 PRI가 선거에서 패배한 게 2000년. 그러니까 71년 만에 권좌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 1당 독재체제는 어떻게 유지돼왔나. 첫 세대는 혁명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해 통치돼 왔다. 그 혁명 지도자가 사망한다. 그 때 이루어지는 것이 이른바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ation of charisma)작업이다. 혁명지도자의 이상과 운동의 반복화와 일상화를 통해서 체제유지를 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곧 한계에 부딪힌다. 그 때 찾아드는 게 정치적 딜레마다. 그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에도 실패한다. 그 경우 그 체제는 더 탄압적이 되면서 폭정체제로 변한다. 그러면서 체제붕괴의 위기를 맞는다. 북한이 그 케이스다.
1당 독재체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부를 일궈내고 상당한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그래도 정치적 딜레마에 봉착하기는 마찬가지다. 성격이 다른 딜레마이긴 하지만.
그 전례는 PRI 장기독재 멕시코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중산층이 형성된다. 그 중산층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 결국 민주화 요구로 이어지고 오랜 독재체제는 그 시끄러운 중산층 대두와 함께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렇기 되기까지 소요된 세월이 70년이다.
“인종적으로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와 문화전통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동일한 지향성을 보인다.” 최근의 한 세계적인 연구조사는 유럽,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 지구촌 곳곳에서의 중산층을 비교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자기표현, 권위로부터의 해방이 중산층이 지닌 공통된 가치관으로 중산층 대두와 함께 형성된 심리학적, 사회적 변화는 권위주의 통치의 적법성을 뒤흔들고 결국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중국이 아닐까’-. 많은 중국전문가들 던지는 화두다.
북경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해가 1949년이다. 그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적인 계기가 마련된 해가 1978년이다. 그해 11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11기 3중 전회에서 등소평은 “사상해방, 실사구시, 단결일치로 전진하자”는 구호를 내건다. 개혁개방노선을 선언한 것이다.
그 후 30여년.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수억의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나면서 중국 형 중산층이 형성됐다. 그러나 그 성장은 만만치 않은 대가를 담보로 이루어졌다. 살인적인 환경오염이 그 하나. 거기다가 만연한 부패, 심회되는 빈부격차 등으로 중국사회는 거대한 모순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 계층으로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이 정황에서 새삼 다시 제기되는 것이 ‘1당 독재체제 70년 한명(限命)론’이다. 올해로 64년째 유지되어온 중국 공산당 통치체제의 수명이 과연 얼마나 갈 것인지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제 5세대 시진핑 등장과 함께 중국은 정치적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동안의 기대였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모택동식 대중노선을 추구한다. 동시에 인권운동가, 지식인 등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이 좌회전 시그널을 보내면서 시진핑 체제는 18기 3중 전회에서 ‘혁명적인 개혁’을 공언하고 있다. 어떻게 보아야하나.
“고르바초프 강박증세 때문인 것 같다.”애틀랜틱 지의 지적이다. 정치적 양보는 결국 체제붕괴로 이어졌다. 그 소련의 전철을 절대 안 밟는다는 거다. 그래서 내려진 정책방향은 ‘공산당 최우선주의’ 재확인이다. 정치적 자유화 없이 경제성장을 계속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풍요의 레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인데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 -한 중국 전문가의 단언이다. 극히 모순된 게 시진핑 체제로 민주화 개혁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 ‘70년 한명론’에 대입하면 북한의 수령 독재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언제일까. 1948년에 그 체제가 들어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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