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홈스, 애담 란자, 존 자와리, 아론 알렉시스, 폴 시안시아. 지난 1년 반 동안 미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9월 중순 워싱턴 해군기지에서 12명을 총격살해한 알렉시스(34)를 제외하면 모두 20대의 어린 청년들이다.
지난해 7월 콜로라도, 오로라의 심야 극장에서 총을 휘둘러 12명을 사살한 홈스는 당시 24살. 지난 연말 코네티컷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20명 등 26명을 처참하게 죽인 란자는 20살. 지난 6월 아버지와 형을 죽인 후 산타모니카 칼리지로 가서 총을 쏘아대 3명을 추가로 죽인 자와리는 23살. 이번에 LA 국제공항에서 총을 휘두른 시안시아는 23살이다. 홈스를 제외하면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에 지옥불 같은 증오를 뿜어내고 스스로 지옥불로 들어갔다.
동년배인 이들의 공통점은 조용한 외톨이였다는 것이다. 누구와 말하는 것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늘 혼자여서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를 존재들이었다. 그런 청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완전무장하고 극장, 초등학교, 대학교, 공항 등 공공장소로 가서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원인도 배경도 분명치 않은 무차별 총격사건들이 근년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누구와도 원한 산 일 없는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객관적으로 가장 안전한 학교에서 떼죽음을 당한다면 누구도 어디에서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개인 소지 총기가 3억정이 넘는 나라에서 100% 안전지대는 없다.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면 두 가지가 지적된다. 총기와 정신질환이다. 진보진영이 무차별 총격사건의 주범으로 ‘총’을 꼽는다면 보수진영은 ‘정신건강’을 꼽는다. 총이 규제 없이 너무 나도는 게 문제라는 지적과 정신질환자들이 너무 방치되는 게 문제라는 주장이다.
총기규제는 진척이 없다. 샌디 훅 참극 이후 당장이라도 규제를 강화할 것 같던 연방의회는 이제껏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미적미적 미루는 사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국총기협회의 강력한 입김 앞에서 보수 공화당 의원들이 몸을 사리는 때문이다.
정신질환 치료가 너무 까다로운 것도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입원은커녕 진단받게 하기도 어렵다. 1960년대 이후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결과이다. 정신질환자들을 병원에 감금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게 하는 게 낫다는 이론에서 출발 했는데, 부작용이 적지 않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해서 병을 키우는 케이스들이 너무 많다.
결과를 보면 무차별 총기 난사범들은 대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그런 청년들이 살상무기를 손에 넣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정신과 치료도, 총기 규제도 제대로 안 되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제2의 홈스, 제3의 란자가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다.
‘홈스’ ‘란자’ 혹은 ‘조승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느 아이 못지않게 해맑게 태어났을 아이들이 어떻게 20년 후 괴물이 되었을까. 사람이 사람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일용할 양식이다.
지난해 하버드대 연구진이 18세부터 25세 사이 연령층 200명을 대상으로 유년기의 경험과 뇌구조를 조사했다. 대부분 중산층의 고학력자들이었다. 연구 결과 어려서 학대를 받거나 방치된 사람은 청년기에 우울증, 중독,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학대당하거나 혼자 내버려지면 그때의 공포감과 긴장감이 어린 뇌에 각인돼 청년기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 외톨이들이 총기 난사범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어린 시절 학대나 방치 경험이 우울증이나 약물중독으로 이어지고 그런 그들에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극한으로 치솟았을 수가 있다.
세상이 안전하려면 총기규제와 정신질환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보다 먼저 좋은 부모가 필요하다. 아이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부모이다. 아이는 하루 세끼 밥과 함께 관심과 사랑,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먹고 자란다. 사회문제의 뿌리는 결국 가정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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