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요즈음 선천적 복수국적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국적법 위헌소송이 각하된 상태여서 박 소장의 방문은 무척이나 관심을 끌었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을 만나는 등 공식행사를 가지기 전에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 이탈을 제한하는 국적법 관련 헌법소원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곳 워싱턴에 있는 전종준 변호사가 제기한 국적이탈 위헌 소송을 왜 각하했습니까? 국제화시대에 진지하게 검토해 볼 사안이 아닌가요?” 라고 한 특파원의 질문에 대해 박 소장은 “청구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 사안은 만약 본안 심의에 들어가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청구기간이 도강하면 각하할 수밖에 없다. 청구기간은 인지한 날로부터 90일, 기본권 침해일로 부터 1년 이내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록 청구기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권리 구제형 헌법소원의 경우,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면 헌법재판소는 심의를 할 수 있는데 이번 헌법소원에 6가지의 정당한 사유를 나열하였으나 박 소장은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박 소장의 답변은 각하 결정을 내린 판결문과 상반된 발언을 하여 각하결정에 대한 정치적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다니엘 김의 경우 편법적 병역기피나 원정출산과 관계가 없고 또한 해외거주자에 대한 국적법 개정에 관한 정부의 통보(Notice)도 없었기 때문에 청구기간의 도래 시점을 알 수가 없었고, 이런 ‘적법절차의 원칙 위반’으로 부당하게 국적이탈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현재 미주 동포의 서명운동 전개와 인재의 국내유입이라는 국가적 공익이나 정책적 요구 그리고 국적이탈의 자유의 침해 정도가 너무나 중대하고 사안이 긴급하며 또한 국회의 입법작업이 늦을 경우, 헌법재판소는 헌법적 의무로 사안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모든 사유를 무시한 채, 각하 결정을 하였다.
이번 각하 결정은 앞으로 법무부가 재외동포들을 위한 국적법 및 병역법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 셈이 된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하면 한국인은 뼛속 깊이 한국의 혈통주의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박 소장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 이탈을 제한한 국적법이 청구요건을 갖춰 본안 심사하게 되면 심도 있게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각하결정에는 심도 있는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각하 결정문에 의하면, “2006년에 국적법에 관해 합헌임을 밝혔다.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에 대하여 이미 위와 같이 헌법적으로 해명이 있었고, 위 견해는 그 자체로 타당하며, 지금도 달리 판단해야 할 사정 변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였다.
2006년도에 국적이탈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청구한 헌법소원에서는 ‘적법절차의 원칙 위반’이란 새로운 이론으로 위헌을 증명했으나 이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은 채, 전과 똑같은 사안인 것처럼 처리해 버린 정치적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박 소장이 앞으로 종합적이고 심도있게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단지 또 다른 정치적 발언에 불과한 셈이다. 이번에 심도있게 검토하지 않은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다음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검토한다는 것인지 의문이 앞선다.
국적법상 18세가 돼 제 1국민역으로 편입된 후 3개월 이내에 국적선택을 하지 않으면 만 38세가 될 때까지 20년 동안 국적이탈을 할 수 없게 되고, 한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시 병역이 부과된다. 미국에서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영주권자였고 또한 이런 국적법을 몰라서 국적이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국적을 이탈할 수 없어 미국의 중요한 공직진출을 방해받을 수가 있다.
박 소장의 발언은 잘못된 법에 의한 잘못된 각하 판결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 앞으로 국회를 통한 입법개정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길 바라며 또한 제2, 제3의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한국인의 기본권이 보장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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