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산에 갈 때마다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다. 나무들에게도 철학(哲學)이 있을까? 생각 자체가 엉뚱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산에 갈 때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저 고양이에게도 철학이 있을까? 만약, 나무와 고양이에게도 철학이 있다면?
철학! 듣기만 해도 머리가 무거워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인간에겐 철학이 있어 그 철학이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들어간다. 그럼, 도대체 철학이란 무엇을 뜻하나. 사전적 의미다. “철학이란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스러운 천착이다.” 여기서 또 천착(穿鑿)이란 무엇인가.
천착이란 뚫출 천, 뚫을 착, 즉 구멍을 뚫음의 뜻인데 어떤 내용이나 원인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이라 한다. 그러니 철학이란 세계, 인간, 사물, 현상 등의 가치와 뜻과 본질의 내용과 원인을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어렵다.
프랑스에선 철학과목이 대입시험에 나온다. 철학에서 낙방하면 진학이 어렵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 그렇다. 세계의 수많은 대학에서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시험을 치루는 곳은 아마 프랑스가 유일하지 않을까. 수많은 지성들이 프랑스에서 배출되는 것이 그냥 된 게 아닌 것은, 그들이 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한국에선 가장 인기 없는 과목이 철학이다. 대학입시에 반영은커녕, 대학의 철학과 자체가 존폐위기에 놓여있다. 이유는, 철학과를 선택하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왜, 철학과를 선택하지 않느냐? 철학과 나와 봐야 취직도 안 되고 돈도 못 버니 그렇다. 그러나 철학과 신학은 비슷한데도 신학교는 학생들이 많다.
신학교는 나와 목사가 되니 그렇다. 요즘 목사들은 보통의 직장인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 교회 개척하여 부흥만 시키면 직장인은 저리 가라할 정도의 수입이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목사들이 수없이 양산되고 있고, 그것이 한국 기독교와 사회의 질을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신학이던 철학이던 한국에선 돈이 되는 학과에만 학생들이 편중된다. 철학과를 포함해 돈하고 먼 기초 순수학문은 눈밖에 난지 오래다. 가장 순수해야 할 초중고교와 대학 때, 이미 학생들은 돈에만 치중하게 교육(학부모와 교사에게)받는다. 이런 실상이다 보니 한국 사회엔 철학이 있을 리 만무요 가치관이 제대로 설 리가 만무다.
재벌들에 의해 한국의 국민총생산량과 총소득은 늘어났다. 그래서 경제적으론 세계 15위권(무역량)안에 들어있는지 모르나 국민의식과 정신세계는 미개발 국가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정치도 마찬가지. 철학도 없이 정치하다 보니 정치판에서도 돈과 인맥과 학맥이면 다 된다. 철학(가치관)이 실종된 나라다. 문제다.
미국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총기사고들. 총기를 규제해야 그나마도 총기사고가 감소될 것인데. 그게 아니다. 돈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하는 총기협회 로비스트들의 막강한 파워로 총기규제 법안은 때 마다 부결된다. 인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총이 더 중요한 게 미국사회다. 가치가 전도된 철학부재의 나라, 미국일까.
다시 철학으로 돌아 와보자. 철학, 사실 골치 아픈 건 아니다. 간단히 이해하자. 가치관확립이 바로 철학이다. 돼지와 소크라테스, 무엇이 다른가. 먹을 것만 주면 만족하는 게 돼지다.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사랑이 없으면 만족할 수 없는 게 소크라테스(인간의 총칭)다.
나무와 고양이를 보며, 자(自)타(他)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哲學:Philosohpy). 그리스어 사랑하다의 필레인과 지혜의 소피아가 합성돼 만들어진 필라소피아. 프랑스 사람들의 지혜사랑의 눈높이, 문화수준의 높이다. 천덕꾸러기처럼 천대받는 한국의 철학풍토. 한국이 불쌍하다. <장자> 제물론(齊物論)편의 물화(物化:만물의 변화). 장주가 나비, 나비가 장주되는 꿈의 철학이다. 꿈속에서라도 철학을 꿈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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