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대한민국을 대표할 단어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기에 아직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연말까지 아직 두 달 하고도 두 주 정도 남아 있으니.
그뿐이 아니다. 대한민국처럼 논쟁거리, 대형 가십거리가 잇달아 발생하는 사회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빅 사건이 터진다. 그 사건이 일단락이 되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적 사건이 터진다. 그러니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단어가 떠올려진다. ‘DNA검사’란 말이다.
재벌 총수다. 권력자다. 그들의 삶에서 선한 구석은 찾을 길이 없다. 혼외정사쯤은 예사다. 그 불륜의 결합에서 씨가 잉태된다. 그 아이가 자라서 DNA검사를 통해 친자로 확인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시청률이 높다는 드라마치고 이런 플로트가 빠진 스토리가 없다.
허구(虛構)의 세계 스토리로 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드라마의 스토리가 현실 이야기로 찾아왔다. 채동욱 사건이다.
대한민국 권력의 핵이다. 그 검찰총장이 혼외정사로 아들을 두었다. 그 진위를 둘러싸고 권력과 권력이 충돌했다. 여와 야가 갈리고 좌와 우가 대립했다. 그 과정에서 ‘DNA검사’란 단어는 일상용어가 되다시피 했다. 거기에 음모설이 가미되면서 전 국민적 관음증(觀淫症)을 한껏 고조시켰다.
이 채동욱 사건 이후 DNA검사란 단어가 ‘국민 단어’로 등극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달 평균 1500~2000건에 머물렀다. 그 SNS상의 ‘친자확인 DNA검사’ 관련 게시물 건수가 지난달 무려 3만2000건으로 20배나 증가하는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다.
‘DNA검사란 말의 국민 단어화’- 그것이 지닌 함의(含意)는 그러면 과연 무엇일까.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여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 말을 요즘 중국에서는 이렇게 비틀어 쓰여 지고 있다고 한다. “부패 관리 뒤에는 반드시 한 두 명 이상의 첩(妾)이 있다.”그 중국에서 ‘국민 단어’로 등극한 말은 ‘이내’와 ‘少三’이다. 이내는 둘째 부인이란 뜻이다. 少三은 세 번째의 젊은 여자라는 의미로 둘 다 첩을 가리킨다.
출세를 했다. 돈과 권력을 만진다. 그런 남자가 첩, 현대적 표현으로 정부(情婦)를 두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30년 경제개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공산주의 대신 물질주의가 판치는 오늘 날의 중국의 세태가 이렇다는 거다.
이런 세태와 관련해 등장한 게 ‘정부(情婦) 마을’이다. 부동산 개발붐과 함께 고급 아파트촌이 생겨난다. 그 아파트 입주자의 절반 이상이 그런데 묘령의 아가씨들이다. 그들은 공산당 간부, 고급 관리, 국영기업체 임원들의 이내 아니면 少三이다.
베이징 일원에만 최소한 20만 명 이상 (2010년 통계)의 고위층들의 정부가 고급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베이징뿐이 아니다. ‘정부 마을’은 상하이, 센첸 등 붐 경기 지역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존재한다.
베이징의 아파트경기는 이 ‘정부 마을’이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투자도 할 겸, ‘정부 거느리기’ 취미도 살릴 겸 고위층들은 아파트를 사들인다. 이내나 少三이란 존재가 없었으면 때문에 아파트경기는 물론 명품 점, 호텔, 유흥업소 등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현지 업계의 설명이다.
어느 나라나 섹스 스캔들은 있게 마련이다. 중국의 경우 그러나 섹스 스캔들은 바로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이내나 少三이 펑펑 쓰는 돈. 그 돈은 모두가 공금 아니면 뇌물로 받은 돈이기 때문이다.
‘DNA검사란 말의 국민 단어화’- 그 함의는 무엇일까. 다시 앞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검찰총장 후보들이 모두 몸을 사린다’- 채동욱 사건 이후 나온 또 다른 보도다. 자칫 온통 발가벗겨 질 수 있다. 그래서 모두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반듯한 공직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캔들과 부패가 한국의 엘리트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아시아의 선진국 중 대한민국이 가장 부패한 국가라는 홍콩의 정치경제 리스크 컨설턴시(PERC)의 보고서가 괜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가정이 깨져나가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DNA검사란 말의 국민 단어화’가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숨겨진 메시지다.
출세를 위해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겠다. 한국의 젊은 남녀의 25%, 26%가 이 같이 응답한 것으로 한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미국의 경우 그 같이 응답한 남성은 6%, 여성은 5%로 나타났다.) 동시에 늘고 있는 것이 DNA 검사의뢰 증가로 신세대로 갈수록 결혼초기 부인을 의심하는 남자들로 인해 검사의뢰가 쇄도 하고 있다는 보고다.
DNA검사가 일상화 된 사회- 멀리 바라보이는 그 대한민국이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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