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민들이 단단히 뿔났다. 연방정부 셧다운과 채무상한 증액을 둘러싼 정치권의 파행이 지속되자 유권자들은 전례 없는 절망감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주 나온 NBC뉴스와 월스트릿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현 연방의원들을 모두 갈아치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수치는 관련 조사가 실시된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미국은 지금 정치적 양극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대립이 정치권의 일상이 된지는 오래다. 이번 사태가 보여주듯 정치적 교착이 생기면 그것을 푸는데 걸리는 시간도 날로 길어지고 있다. “연방하원의 양극화는 이미 최악의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는 게 유일한 좋은 소식”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이다.
미국 정치가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수십년간 미국은 민주 공화 양당의 타협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구가했다. 요즘은 멸종된 ‘보수적 민주당원’ ‘진보적 공화당원’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런 중도세력을 교집합으로 초당적 정치가 꽃을 피웠으며 실제로 미국사회를 변화시킨 많은 굵직한 정책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서서히 양극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2000년대 들어 치유불능 상태로 급속히 악화돼 왔다. 미국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이 점차 사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인간의 속성과 어우러진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미디어 환경이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공중파 TV 3사와 지역 신문들을 통해 정보를 접했다. 하지만 케이블과 웹 등 새로운 매체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이제는 입맛에 맞는 미디어를 골라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뉴스와 논평을 접한다. 미디어는 식성과 연령에 맞춰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시리얼 비즈니스를 닮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믿고 싶은 것만을 골라 믿으려는 ‘확증편향’이 강해지고 그러면서 자석의 양극처럼 보수와 진보의 상호 배타성은 적대적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이견’이 아니라 ‘반역’으로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출신 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타협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극우 방송 진행자인 러시 림보가 의원을 비난하면서 청취자들을 선동하자 의원 사무실에는 수천통의 항의 이메일과 편지가 날아들었으며 결국 의원은 이에 굴복, 자신의 발언을 사과해야 했다.
이처럼 조직이나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대개 극단적이고 목소리 큰 소수이다. 공화당을 좌지우지하는 세력도 소수의 극우 티파티이다. 게다가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선거에 극성인 극단적 소수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왔다. 정치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의원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는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정말 심각한 질병이다. 미국사회의 건강성을 크게 해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소득 양극화는 동전의 앞과 뒤다. 돈이 선거에 절대적인 요소가 되면서 정치판은 경제적 계급에 의해 나뉘고 이것은 다시 불평등 경제정책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정치적 양극화는 양당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양비론에서 벗어나 굳이 책임의 비율을 따져본다면 민주 4, 공화당 6 정도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은 1970년대에 비해 약간 왼쪽으로 갔지만 공화당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공화당 책임으로 여기는 유권자들이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는 양극화의 갈등을 끊어낼 묘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단 하나, 유권자들이 깨어난다면 희망이 없지는 않다. 파행정치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선거를 통해 분열의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무관심과 냉소에서 벗어나 투표에 적극 참여한다면 정치를 병들게 하는 소수 극단론의 독성을 어느 정도는 희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견들 속에서도 한가지에서만은 생각을 같이했다. “서로 적대적인 정당들은 미국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어리석은 후손들에 의해 현실이 됐다. 선조들의 혜안이 준엄한 꾸지람으로 다가오는 시절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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