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섬. 아주 오래 전에 그 그림<사진>을 보았다. 조형성의 깊이와 아름다움이 좋아서 한참동안 작은 그 그림 앞에 서있었다.
LA에선 친구를 만나려면 늘 한참 운전을 해야 하기에 난 우리들이 섬처럼 떨어져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몇 개의 섬을 왕래하는 게 이 도시에서 산 나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프리웨이를 지나는 그 길들을 좋아했다.
그녀는 왜 오랜 동안 그 섬을 그렸을까. 섬을 그리던 시대가 지나고 줄무늬를 닮은 작업의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그토록 오래 하나의 섬을 그리던 그녀가 두 개의 섬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오랜 동안 그녀의 그림을 주시하며 의문이 일곤 했다.
깊고 푸른 청 빛들 속에 조용히 홀로 있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섬 그림을 처음 본 후 10여년 지나 그녀의 화실을 방문했다. 아주 오랜 동안 그 그림은 아련히 마음속에 있었고, 그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남쪽을 향해 110번을 타고 프리웨이가 끝날 무렵 바닷바람이 서늘하고 공기가 맑은, 한적하고 깨끗한 거리에 화가 김윤진의 화실이 있었고, 꼭 방문하고 싶었던 화가 최성호의 LS 화랑이 바로 옆에 있었다. 몇 명의 화가들이 그 건물에서 그림을 그리고 매달 첫 목요일 저녁엔 오픈 스튜디오로 개방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은 날보다는 조용히 그림을 한참 바라볼 수 있는 한적함이 좋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그녀의 인생과 섬 그림에 대해 들었다. 마치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 같았다.
하나의 현대 미술작품을 바라볼 때에 그 작품의 내용보다는 조형 형식의 고차원적 조화, 색감, 선, 형태와 필치에 드러나는 작가의 정신 상태에 이끌리기에, 작가가 생각하는 설화적 내용이 작가에게는 중요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김윤진의 섬 그림이 태동한 얘기를 들으며 작가의 영적인 조건이 작품성에 알 수 없는 신비한 깊이를 더하고, 그토록 오래 깊이 모색해왔기에 그 그림에 깊이 끌렸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하나님과의 관계, 영성을 향해 가는 오랜 도정이 섬 그림에 있다고 말했다. 마치 중세의 그림들이 영성의 숭고함을 표현하듯 그녀의 섬의 조용한 빛남에는 하나님을 향한 오랜 기도와 헤맴, 하나 됨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섬은 고립무원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하나의 섬이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워 고요함에 도달한 그녀 존재의 자화상임과 동시에 작업을 보는 이와 일치하려는 조용히 열린 존재의 표상이다.
예전엔 그녀의 창가에서 카타리나 섬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스페인 함대가 섬을 발견한 날이 카타리나 성녀의 축일이었기에 카타리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그녀의 세례명이 카타리나라고 하는 점은 그녀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오래오래 자신의 삶에 주어진 십자가를 성찰하며 하나님과의 일치를 묵상해왔기에 그 섬은 그녀의 존재와 삶이기도 하다. 무지개가 뜬 날 그린 무지개 섬이 있기도 했고, 영생의 정점을 상징해 그린 삼각형의 섬이 화실로 들어가는 문 옆에 있었다. 모든 것을 허용하기에, 하나의 섬은 빛나고, 실제로는 섬이 물체이고 대기가 비워있음에 반해 그녀의 섬은 비어있고, 반투명하고, 세상을 나타내는 듯 그림 속 대기가 불투명하기도 하다.
그냥 그 그림이 좋아서 찾아간 나에게 조용히, 천천히 말하는 그녀의 얘기들은 여러 차원의 비밀을 드러내주었고, 한 작품의 연작이 창조되기 위하여 한 영혼이 얼마나 오랜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숙고하며 모색해왔는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엔 성소(altar)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무한히 펼쳐지는 대기를 바라보며 영성과 숭고함, 경건함과 겸허가 사라진 듯한 현대의 문명과 예술 세계에서 차라리 더욱 많은 영혼들이 꿈꾸고 갈급해하는 게 영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섬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신의 은총이 있어 그 섬은 따뜻하고 다정했고 조용히 빛이 났기에 내 마음에도 하나의 불꽃이 켜진 듯했다. 우린 모두 불확실한 은총에 던져져 하나의 불꽃을 지피며 서로를 기다리고 초대하는,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의 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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