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굴러간다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의 신뢰를 저버리고 등을 돌리는 행위, 즉 ‘배신’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행태 가운데 하나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척박해지면서 배신은 그 말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회적 성공을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 이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는 배신의 이득을 잘 설명해 준다. 각기 다른 방에 갇힌 죄수 A와 B를 상대로 검사가 분리심문을 한다. 먼저 A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여기서 B의 죄를 불고, B는 너의 죄를 불지 않으면 모든 죄는 B가 진 것이니 너는 석방되고 B는 10년형을 살게 된다. 둘 다 불지 않으면 증거불충분으로 각각 1년형을 살게 되고 둘 다 폭로하게 되면 공범이 돼 각각 5년형을 살게 된다. 반대로 B가 네 죄를 진술하면 너는 10년형을 살고 B는 풀려난다.”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배신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가 얻는 이득이 결정된다. 상대가 침묵하든 폭로하든, 나는 폭로하는 게 이득이 된다. 상대 역시 똑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은 둘 다 5년형을 살게 된다. 최선의 선택은 모두가 침묵해서 1년만 사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폭로가 안겨주는 이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신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배신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무수한 배신들로 점철돼 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업 등 조직과 남녀관계 등 인간의 모든 영역에 걸쳐 온갖 형태의 배신들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다보니 ‘신뢰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명제는 지극히 추상적으로 들리는 반면, 배신을 통해 얻는 이득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배신을 해도 즉각 처벌 받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사회에서 배신의 이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친일이다. 동족을 배신한 친일세력은 일제 강점기에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해방 후까지 재산과 지위를 지켰을 뿐 아니라 21세기인 오늘까지도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친일청산 실패는 한국사회속에 배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일조했다. 왜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사회 바로 세우기가 힘든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모든 배신이 다 추악한 것은 아니다. 아주 간혹 바람직한 배신도 있다. 내부고발 같은 것이 그렇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나 부패를 고발하는 것을 조직 입장에서 보자면 배신일 수 있다. 이런 배신은 보상은커녕 보통 해고와 왕따 등 저열한 수법에 의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도 분명 이득이 따른다. 공적 이익의 증진이다. 그러니 이런 배신은 ‘아름다운 배신’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무수한 배신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남는 것은 ‘선거의 배신’이다. 정치인들은 온갖 달콤한 약속들로 유권자들을 현혹한 후 일단 당선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얼굴을 바꾼다. 권력이라는 막대한 전리품을 챙기지만 배신에 대한 처벌이나 응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00%의 대한민국’이니 하는, 현실이 되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추상적인 공약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주 구체적인 수치들과 단어들로 한 약속조차 헌신짝처럼 버린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지만 갈수록 마음 바뀌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 약속 당시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747 공약’을 내걸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은 전혀 현실성 없다는 것을 알고도 이것을 앞세웠다. 이 정도면 배신이 아니라 사기수준이다. 서민을 구호로 내세워 당선된 노무현 시절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졌다. 그래서 수많은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공약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약속 불이행에 부담을 느낀 주무장관이 사임하자 그를 향한 여권의 ‘배신자’ 비난과 성토가 거세다. 하지만 사퇴 결정이 대통령의 ‘선거 배신’에서 연유한 것임에 비춰볼 때 그를 향한 비난은 왠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큰 허물이 작은 허물을 성토하는 게 대단히 우습기도 하고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낳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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