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 뉴욕에 갔었다.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프리웨이가 막히는 시간이어서 일반도로로 갔는데 창밖으로 오래된 도시의 찌든 모습이 이어졌다. 건물들은 낡고 지저분하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행색에는 빈곤이 묻어났다.
그러더니 어느 길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풍경이 확 바뀌었다. 거리가 깨끗하고 건물들은 반듯하며 사람들은 활기차고 여유 있어 보였다. 자동차로 불과 몇 분 안 되는 거리에 전혀 다른 두 세상이 있었다. 같은 도시라도 삶의 모습이 이렇게 다른 것은 미국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익숙한 곳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 낯선 도시에 가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난에 찌든 ‘이쪽’에서 안락한 ‘저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모두의 소망이고 미국에서는 그 이동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면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오늘의 고생은 빛나는 내일로 연결된다는 확신, 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낫고 내 아이들은 나 보다 나은 삶을 살리라는 희망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로 확인되던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는 조사결과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버지니아대 밀러센터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부모에 비해 자신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는 대답은 54%인 반면 자녀가 자신보다 잘 살 것으로 믿는 사람은 39%에 불과하다. 미래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이다. 지금의 재정적 압박감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 수많은 사람들은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경험했다. 개미처럼 일해서 장만한 집이 부동산 파동으로 깡통주택이 되고, 금융위기 여파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평생 모은 은퇴연금이 절반으로 깎여 나가는 고통이 쓰나미처럼 덮쳤다. 고통은 삶에 대한 자신감을 깎아내렸다.
앞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의 수입으로 생활을 해나가기가 조마조마하다는 사람이 거의 2/3에 달한다. 세명 중 한명은 돈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40년 전 미국에서 생계비 걱정을 한다는 사람은 절반이 못되었다. 앞으로 형편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별로 없다. 과반수가 5년 내에 봉급이 인상되거나 더 나은 직장을 잡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오히려 지금 직장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 10명중 6명 이상은 실직 걱정을 하는 것을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하트랜드 모니터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면 지금보다 재정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대답이 2/3에 달한다. 부모 세대보다는 우리가, 우리 세대보다는 자녀가 더 여유롭게 사는 것을 당연시하던 미국의 낙관주의에 먹구름이 끼었다.
잘 살던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실제로 지난 불경기를 거치며 미국의 가구당 중간소득은 1988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파이는 계속 커졌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단지 파이 대부분을 극소수가 독차지해서 나머지 다수가 나눌 분량이 줄어든 결과라는 것이다. 심화하는 빈부격차, ‘1% 대 99%’ 이슈이다. 소득 상위 1%의 총 소득은 1979년 미국 전체소득의 10%였던 것이 지금 20%로 뛰었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이들의 소득은 올라갔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소득 격차가 교육 격차,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학력 부유층 부모의 자녀와 저학력 저소득층 부모의 자녀는 출발부터 다르다. 온갖 조기교육과 일류 유치원, 일류 초등학교 … 명문대학으로 이어지는 전자의 경쟁력을 후자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취업할 나이쯤 되면 둘 사이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가난도 부도 대물림되면서 세대를 넘는 계층이 형성된다.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은 사회이동이다. 하위계층에서 상위계층으로 올라가려는 꿈,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려는 의지이다. 그 사이에 점점 강고한 장벽이 들어서고 있다. 개인적 능력과 노력만으로 뛰어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장벽 낮추는 정책을 펴도록,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도록 ‘99%’는 힘을 모아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지 못하는 사회에 ‘드림’은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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