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객원논설위원>
“그대가 남긴 마지막 말, ‘주님이 오셨다. 됐다.’했다니 어서 주님과 함께 떠나시게. 그대를 위해 태초부터 마련된 하느님 품에서 편히 쉬시게. 하늘로 가는 길이 길 없는 길일지라도 바쁜 세상일 벗어났으니 천천히 한눈도 팔면서 떠나시게. 늦어도 빨라도 사흘이면 그렇게도 그리던 천국의 문은 열리리니...I Love you!”
지난 달 25일 하늘나라로 떠난 최인호(68)씨의 영전에 바치는 친구 김형영 시인의 시 ‘I Love you!’의 일부분이다. 1963년, 서울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8세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최인호. 그가 등단 5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 5년간의 지병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던지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청년들의 영원한 벗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 1970년대, 독재에 짓눌려 살아야만 했던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삶의 빛을 안겨주었고 울분을 감싸주었다. 그런 작품 중엔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등이 있다. 또 1997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된 <상도>는 인기 ‘짱’이었다.
<상도>는 단행본으로 발간돼 300만부 이상이 팔렸고 연속극화 되어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상도엔 ‘계영배’가 소개돼 많은 사람들을 절제와 중도(中道)의 삶으로 인도했다. 중국에서 유래된 계영배(戒盈?)는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으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량 차오르면 술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그는 ‘침샘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출간된 책이 <인연>과 동화집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였다. 또 최근에 혼을 사르듯 써낸 작품이 <인생>과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며 글을 썼다.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행사로 뉴욕에 들린 적이 있는 최인호씨를 가까이 만난 적이 있다. 수더분하게 생긴 그의 얼굴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시골농부아저씨 같았다. 그때만 해도 그는 아무런 지병도 없었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떠났다. 죽음이란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인간사에 하나의 관문임엔 틀림없다.
인생엔 두 개의 큰 관문이 있다. 하나는 생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탄생의 문이요 또 하나는 삶을 마감하고 생을 떠나는 죽음의 문이다. 두 개의 문 중 탄생의 문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수동태의 문으로 자신도 모르게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다. 허나, 죽음의 문은 다르다. 삶의 과정에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하는 게 죽음의 문이다.
예일대 교수 셀리 케이건(Shelly Kagan)은 죽음(Death)이란 삶을 전제하지 않고 생각할 수 없으며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본다. 그는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고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며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라 한다.
죽음에 대해 17년동안의 연속강의로 세계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셀리 케이건은 삶이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대로 생(生)은 유일회(唯一回)적이다. 유일회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인간 개개인의 살아있는 목숨은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는 지상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기독교를 믿는 어떤 친구는 매일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하는 기도. “하나님아버지,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오니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침, 깨어나서 드리는 기도. “하나님아버지 오늘도 새 날과 새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죽음. 너무 멀리 있지도 않고 너무 가까이에 있지도 않다. 하늘이 부르면 순서 없이 가야만하는 게 죽음이다. “내 영혼의 혈연이여, 내 목소리 그대가 들을 수 없고 그대 목소리 내가 듣지 못해도 그대를 반기는 하늘의 영생의 나팔소리 내 영혼의 귓전까지 울리는 듯하네. I Love you!” 최인호를 보내는 김형영의 시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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