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초기 한때 40%정도였던 지지율은 100일 즈음 50%대로 올라서더니 이후 60%가 넘는 추세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지지율은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같다. 방송 다음 날 시청률 표를 받아드는 PD들의 표정처럼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지지율의 추이에 따라 정치인들 또한 일희일비 한다.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 지지율은 다음 선거의 당락을 점칠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지지율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추진하는 국정이 당장 얼마만큼의 동력을 얻느냐가 지지율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가 별로 없었던 이명박 정부시절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고 있다는 셀프 여론조사 결과를 수시로 발표하며 조기 레임덕 방지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의 지지율 조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다 안다. 주로 집 전화를 대상으로 한 방식도 문제였지만 여론조사로서 더 심각한 하자는 응답률이었다. 응답률이 20% 이하인 조사결과는 폐기하는 것이 여론조사의 상식이다. 선진국 여론조사기관들은 심지어 30% 이하 조사결과까지도 공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응답률이 10% 정도에 불과한 조사를 신뢰할만한 결과인양 발표했으니 전문가들이 코웃음을 칠만도 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 본다면 100명에게 전화를 걸어 10명만이 응답하고 이 가운데 5명만 ‘잘하는 것 같다’고 응답해도 지지율 50%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60%를 넘나드는 것으로 발표되는 박 대통령 지지율을 전임 정권과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지지의 단단함에서 이명박 정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60%가 넘는 지지율의 수치에는 분명 거품이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들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맹점이 보인다. 역시 응답률이 문제다. 응답률이 20%에 미치지 못하는 조사들이 많다. 만약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응답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긍정보다는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정권과 유착된 보수언론들이 생산해 내는 거품이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이들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헌신해 왔다. 일부 신문과 방송매체들이 대통령의 패션과 외국어 실력 등 지엽적인 사안에 무분별하게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영향력을 가진 언론일수록 중립성과 객관성을 생명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권의 시혜에 자신들의 사익을 걸고 있는 이들은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선별적이면서도 가치 편중적인 태도로 이미지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화보 정치’ ‘이미지 정치’가 정권 홍보를 자처하는 매체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언론들이 발표하는 지지율이 다른 매체들의 지지율보다 통상 몇% 더 높게 나오는 것도 주목해 봐야 한다.
그러나 지지율과 관련해 거품보다 더 본질적인 위험은 그 수치가 안고 있는 독성이다. 높은 지지율이 정치인들, 특히 국가지도자들에게 항상 축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저주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는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틀러는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됐다. 그리고 90%가 넘는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악행을 저질렀다. 그의 등장과 통치행위에는 아무런 절차적 하자가 없었다. 부시가 무모하게 이라크 전을 일으켰을 당시 그의 지지율은 93%에 달했다. ‘민주주의의 역설’ 혹은 ‘지지율의 역설’로 불리는 이런 역사적 비극은 높은 지지율이 곧 옳은 방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터져 나오는 국기문란 사건들 속에서도 불통의 오만한 모습을 견지해 왔다. 높은 지지율을 너무 믿고 그러는 것 아닌가 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복지와 관련한 논쟁이 거세지고 최측근 이탈이 발생하면서 고공행진을 해오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요동칠 때 승객들이 순간이나마 삶의 유한성을 떠올리듯, 지지율 하락이 박 대통령에게 아무쪼록 권력의 유한성을 깨닫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현재의 지지율이 약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오롯이 대통령 하기에 달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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