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최저임금을 오는 2016년 1월까지 단계적 인상을 통해 시간당 10달러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주지사 서명을 거쳐 최저임금이 오르게 되면 현재 전국 8위인 캘리포니아의 최저임금 순위도 몇 단계 뛰게 된다.
최저임금은 항상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가 돼 왔다. 노동계층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빈곤선 탈출을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임금 인상이 경제를 망치고 일자리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맞서왔다.
양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을 제시하며 상대 주장을 공격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론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가난한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추가 수입은 지출을 통해 다시 경제에 투입되고 결국 전체 경제의 성장에 순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임금 인상이 결국 감원을 초래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역기능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여러 실증조사에서 보편타당성이 약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직원들의 이직이 줄고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지출 면에서 이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생산성은 급속히 향상돼 왔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실과를 업주와 종업원들이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1960대의 최저임금에 생산성을 반영해 현재의 적정 최저임금을 산정해 보면 최소 15달러는 돼야 한다. 지난 노동절부터 패스트푸드 종업원들이 집단시위를 통해 요구하고 있는 액수가 이것이다. 또 단순 인플레율만 적용해도 10달러는 넘어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결정한 임금과 비슷하다.
최저임금 논쟁은 그동안 지나치게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얽힌 채 전개돼 왔다. 그러다 보니 임금 인상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일쑤였으며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빈곤의 악순환과 빈부 격차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을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깨우쳐 준 사람이 언더커버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애런라이크이다. 애런라이크는 3년 동안 식당 웨이트리스와 호텔 객실 청소부 등 최저임금 노동자로 직접 생활하면서 관찰한 것을 지난 2001년 ‘Nickel and Dimed’(한국판 제목은 ‘노동의 배신’)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책에서 애런라이크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수준과 이들이 일터에서 받는 감정적 학대를 고발하고 있다. ‘노동의 배신’이라는 한국판 책제목은 메시지를 압축해 준다. 이들은 결코 일을 하지 않거나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빈곤을 고착화 시키는 미국사회의 최저임금 실태를 폭로한 이 책은 무려 150만부 이상 팔렸으며 수십개 주의 최저임금을 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이처럼 최저임금 논쟁은 단순히 액수가 아닌,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에 관한 문제이다. 노동이 대접 받던 시절 미국은 번성했을 뿐 아니라 평화로웠다. 그러나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노동은 점차 천시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생계 꾸리기에도 벅찬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진보 정치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도덕적 책무’라고 외친다. 그러나 도덕이니 정의니 하는 구호는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다. 그보다는 사회적 양식의 차원에서 최저임금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양식 있는 사회, 특히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사회라면 능력에 따른 보상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가 노정되면서 서구 국가들은 물론 동남아 개발도상국들까지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는 것이 최근 세계적 추세다. 사회적 양식에 눈을 뜨면서 최저임금을 ‘근시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거시적인 선순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21세기 초반 브라질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룰라 대통령은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라며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을 꼬집은 적이 있다. 룰라의 지적은 부자 감세에는 열심이면서도 가난한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을 병아리 눈물만큼 올려주는 일에는 끝없이 몽니를 부리는 한국과 미국의 못난 정치인들을 향한 일갈처럼 들린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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