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를 합법화 하자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어가는 가운데 실제로 합법화 조치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주민투표에서 워싱턴과 콜로라도가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마리화나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는 주는 모두 18개로 늘어났다. 또 최근에는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브라질 등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마리화나를 전면 허용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연방 상원은 10일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를 다루기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번 청문회는 마리화나 허용과 관련한 논의가 연방 차원에서 본격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리화나, 즉 대마초를 터부시 해 온 많은 기성세대 한인들에게 이런 추세는 불편할 수 있다. 대마초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아주 무거운 부정적 함의가 덧씌워진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마리화나에 대한 한인들의 인식은 대체로 완고하다.
물론 미국사회에서도 마리화나는 불법이다. 적어도 연방법으로는 그렇다. 일부 주에서 부분 합법화가 됐지만 엄연히 연방법에는 저촉되는 조치들이다. 단지 연방정부가 주정부들에 대한 시비를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연방정부의 침묵은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퓨 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미국인은 52%인 반면 반대하는 사람은 4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라면 찬성비율이 곧 60%에 도달할 것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리화나 합법화 캠페인에 일부 보수진영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덕과 윤리, 사회질서를 중요시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마리화나 합법화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게 조금 놀랍기는 하다.
하지만 마리화나를 비롯한 마약을 제한적으로나마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먼저 개진했던 사람들은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몇 년 전 작고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맨이다. 이들의 논거는 도덕이 아니다. 미국의 마약단속 정책이 전혀 경제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마약정책은 범죄를 부추기고 범죄자만을 양산할 뿐 수요를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범죄 등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 면에서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감옥은 마약관련 범죄자들로 넘쳐난다. 범죄자 한 명에 드는 비용은 연 2만달러로 웬만한 주립대 등록금보다 많다. 왜 지난달 연방 법무장관이 “죄질이 가벼운 마약 범죄자들은 감옥에 보내지 않는 방향으로 사법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는지 이해가 간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결국 마리화나의 중독성과 사회적 유해성에 관한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 반대론의 핵심은 ‘관문론’(gate theory)이다. 마리화나를 피우다 보면 점차 다른 중독성 강한 마약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합법화 찬성론자들은 최초로 마리화나를 합법화 한 네덜란드를 대응논리로 내세운다. 합법화 후 네덜란드에서 마리화나는 물론 다른 마약류 사용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마리화나 합법화 논쟁을 경제적, 과학적 논리로만 풀어갈 수는 없다. 정서의 문제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법화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날로 옅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보수 공화당 내 분위기도 그렇다. 미국정부의 마약정책을 비판해 온 데이나 로라바커 연방하원의원은 “만약 비밀투표를 한다면 공화당 의원 절반 이상이 합법화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까지 자신한다.
흐르는 물은 다른 환경과 지형이 앞에 나타나면 물줄기의 방향을 틀어 흐름을 계속한다.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시류 역시 사회의 변화에 따라 계속 흐름을 바꾸어 간다. 그렇게 과거의 수많은 금기들이 현재의 일상적인 시속(時俗)과 권리가 됐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항상 나은 방향으로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화나 합법화 논쟁도 결국은 같은 길을 밟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고 조만간 미국에서 마리화나가 전면 합법화 되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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