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봉우리 올라서면 그 앞에는 더 높은 봉우리. 다시 신발 끈 조여매고 숨 가쁘게 올라가면, 정상 정복의 환희도 잠시, 다시 앞을 가로막는 건 더 높은 산. 인생은 차례로 다가드는 산봉우리 등정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진학의 가파른 봉우리, 취직이라는 높은 산 그리고 나면 승진, 결혼, 자녀양육 … 매 시기마다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가없는 벌판이다. 더 이상 넘어야 할 산이 없다. 어제를 살았듯 오늘을 살고 오늘 같은 내일이 이어진다. ‘산’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던 젊은 날의 투지와 열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아련한 추억으로서 편안하다. 그렇게 노년은 찾아든다. 인생 제3의 시기, 노년기로 들어서는 문턱을 예순 즈음으로 보면 적당할까? 꿈 보다는 현상유지, 도전 보다는 자족을 삶의 지혜로 타협하는 시기이다. 적당히 포기하고 반쯤 체념한다. 살던 대로 살아갈 뿐이다.
나이 60을 전혀 다르게 맞을 수도 있다고 한 여성이 몸으로 웅변했다. 지난 노동절 연휴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10마일을 수영으로 횡단한 다이애나 나이아드라는 여성이다. 상어와 독성 해파리들을 피해가며, 졸음과 탈진을 극복하며 장장 53시간에 걸쳐 플로리다 해협을 건넌 후 64세의 그는 말했다.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꿈을 추기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셋째 겉보기에는 혼자 한 것 같지만 사실은 팀이 이뤄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플로리다 해협을 최초로 횡단한 사람은 지난 1997년 수지 마로니라는 호주의 장거리 수영선수였다. 당시 22세의 마로니는 상어 공격에 대비한 철창 보호대를 착용하고 수영했다. 이번에 나이아드는 상어 방어용 철창 없이 맨몸으로 횡단한 최초의 케이스로 기록되었다. 잠 안자고 가만히 있기도 힘든 긴 시간, 한 동작 한 동작 몸을 밀어 한 뼘 한 뼘 망망대해를 건너는 고통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처절한 사투, 말 그대로 지옥 행진이었을 것이다.
나이아드는 젊은 시절 장거리 수영선수였다. 고교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활약했고, 20대 중반인 1975년 둘레 28마일의 맨해턴 섬을 8시간 미만에 수영해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1979년에는 바하마 북단에서 플로리다 주노 비치까지 102마일을 27.5시간에 수영, 당시로서는 최장거리 수영기록을 세웠다.
그리고는 30년 그는 물을 떠나 살았다. 수영선수로 얻은 명성 덕분에 스포츠 저널리스트, 방송인, 동기부여 연사, 저술가 등으로 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던 그가 수영을 다시 생각한 것은 60세 생일을 맞으면서였다. 1978년 29살 때 도전했다 실패한 쿠바 - 플로리다 횡단이 못 다한 꿈, 이뤄야 할 꿈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그는 30년 만에 다시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피나는 재훈련 기간을 거치고 악천후, 천식 발작, 해파리 공격 등으로 실패한 후 총 5번째 도전 끝에 성공했다. 필생의 프로젝트 완수였다.
그대로 산다고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텐데, 그 힘든 일 그는 왜 시작했을까. “꿈을 갖기에 60은 늦은 나이가 아니란 걸 동년배들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어서”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가 ‘꿈’을 통해 이루려던 것은 ‘해협 횡단’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과의 화해였다. 60 이전까지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앞으로 몇 년이 될 지 모를 생의 마지막 장을 홀가분하게, 새롭게 시작하려는 결의였다.
그는 평생 가슴에 분노를 안고 살았다. 어려서는 계부로부터 성적학대를 받았고, 고교시절에는 수영코치로부터 상습적 성폭행을 당했다. 왜 그때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을까 하는 분노와 후회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예순이 되면서 그는 마음의 창고에 수십년 쌓여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털어내기로 결심했다. 상처투성이 자신을 ‘최고의 나’로 회복시켜줄 치유 수단으로 그는 젊은 날의 꿈을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가. 예순 즈음에는 짚어보아야 하겠다. 관성의 법칙대로 살아가기에 여생은 길고, 삶은 지루하다. 이루지 못해서 가슴 아린 꿈은 무엇인지, 마음의 창고 속에는 어떤 회한들이 있는지, 정신적 재고정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듯 다시 시작한다면 노년의 삶에도 열정이 찾아들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