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부동산 경기가 활활 타오르던 시절 일반인들이 함께 돈을 모아 투자하기 위해 만드는 모임들이 유행했다. 이런 투자클럽들은 한 사람의 자금력과 안목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든 매물에 투자할 수 있는 데다, 함께 투자결정을 내림으로써 개별 투자 때 겪게 되는 불안 심리를 덜어 주는 등 긍정적 이점이 많아 큰 인기였다.
그런데 투자클럽들의 수익을 분석해 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됐다. 구성원들끼리 사교적으로 끈끈하게 얽히고 공동사회적 관계로 맺어져 있을수록 수익률이 낮았다. 반면 사교적 관계보다는 수익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춘 투자클럽들은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다. 이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클럽을 운영하는 데 있어 이견이 많이 제시되고 논쟁이 뒤따르는 클럽일수록 수익률이 확연히 높았다”고 결론지었다.
투자클럽뿐 아니라 기업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견 제시를 하나의 의무로 간주하고 어떤 주제라도 토론할 수 있는 논쟁적인 이사회를 가지고 있을수록 실적이 좋다는 것을 다양한 증거자료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건강한 이사회를 가진 기업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토론보다는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집중하는 패턴은 투자클럽이나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사를 다루는 정부들까지 사교클럽처럼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도 다양한 의견의 개진과 토론은 사라지고 한 가지 목소리만 들린다. 특히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라면 동조와 침묵은 한층 더 심각해진다.
지난 8월21일자 칼럼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방 안보라인 진용이 지나치게 군 출신 일색이어서 집단사고(集團思考)의 함정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었다. 군사적 결정과 관련해 쓰이는 용어 중 ‘근친상간적 증폭’이라는 말이 있다. 위기상황에서는 동일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강화해 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근친상간’은 비슷비슷한 것이 섞일 경우의 위험을 상기시켜 주는 표현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진 것도 근친상간적 증폭의 결과였다. 미국은 1964년부터 3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전을 했다. 결정은 항상 전원 합의에 의해 내려졌다. 당시의 확전 결정에 다른 의견을 가진 인사가 간혹 있었지만 대통령의 면박과 따돌림의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다물었던 것으로 후일 밝혀지기도 했다. 닉슨의 워터게이트도 유유상종 인사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이 초래한 정치사의 비극이었다.
프랑스의 클레망소 총리가 “전쟁은 너무 중요한 일이라 군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근친상간적 증폭’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의 국방 안보라인 진용에 대한 우려를 괜한 기우나 트집 잡기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업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어떠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적극적으로 다른 의견을 구하고 여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많은 리더들은 좋은 말만 전하는 거짓말쟁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기업 전문가 드 브리스 교수의 쓴 소리가 비단 기업만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획일적인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일을 전담하는 직원을 임명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 제도는 중세 가톨릭의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에서 유래한 것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성인자격을 심사할 때 왜 그 사람이 성인이 돼서는 안 되는지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일을 했다. 세상 모두가 숭앙하는 인물이라 해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정신이 배어있다.
기업과 국가들에도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용기 있게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을수록 조직과 국가가 위험의 낭떠러지로 향하게 될 위험은 줄어든다. 단 한 명만 이견을 개진해도 동조로 인한 실수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니 악마의 대변인야말로 실제로는 천사처럼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입에 쓴 음식일수록 몸에는 좋은 법이다. 입에 짝짝 붙는 달콤한 음식만 가까이 하다보면 대사증후군에 걸리게 되고 건강은 엉망이 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견과 쓴 소리를 장려하지 않고 억압하는 조직은 서서히 대사증후군 증세를 나타내다 몰락의 길로 간다. 섭생의 원리와 조직 건강의 원리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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