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천429명이 숨진 화학무기 공격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소행임이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자체 시간표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다.”미국정부의 성명이다. 상당히 긴박하게 들린다. 과연 언제 개입할 것인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주시하고 있다.
2013년 8월의 셋째 주간, 그러니까 화학무기가 사용된 그 주간. 레바논 북부에 있는 트리폴리에서 자동차 자살 폭탄공격사건이 발생했다. 그 결과 27명이 숨지고 350명이 부상을 입었다. 베이루트, 바그다드, 카이로, 아마라, 나시리랴…. 다른 아랍 도시들에서도 유사 사건이 잇달았다. 폭탄을 가득 장착한 자동차로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집트 사이나이 반도에서는 경찰관이 무참히 살해됐다. 리비아의 한 유전지대는 반란군에 의해 장악됐다. 그 정황에서 발생한 것이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공격이다. 상당히 쇼킹하다. 때문에 전 세계의 이목은 이 사건에만 주로 쏠린 것이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 유혈사태다. 이와 함께 ‘아랍의 봄’에 대한 기대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있다. 새삼스런 주장은 ‘무슬림 민주주의’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러면 태생적으로 아랍-이슬람권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것인가. ‘법과 질서 하에서의 자유’는 민족국가(nation-state)에서나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오늘날의 중동사태와 관련해 제기된 하나의 가설이다.
이는 중동문제 전문가 패트릭 코크번의 주장으로, 거대한 파국을 향해 나가고 있는 오늘날 중동사태의 뿌리는 한 세기 전 1916년에 체결된 사이크스-피코 협정에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중동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던 오스만트루크제국의 임종이 임박했다. 그 제국의 시신처리를 놓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제국 러시아도 가담해 비밀협정을 맺었다. 거기서 획책된 것이 오늘날 아랍 국가들의 국경선이다.
원주민의 민족, 종교적 소속감 등은 무시됐다. 그리고 주로 두 나라의 이해에 따라 일직선으로 국경선이 그어 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대부분의 아랍-이슬람 국가들이다.
이 아랍-이슬람권에서 국가의 주권, 국경선 등은 별반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혈연과 특정 종파에 대한 소속감이다. 과거 오스만트루크제국이 제국으로서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아랍의 제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랍- 이슬람권에서 ‘선의의 정치적 라이벌’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벌이 아닌 적만 있을 뿐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 따위는 더더구나 있을 수 없다. 같은 씨족과 같은 종파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뿐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란 개념도 희박하다.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내전도 이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코크번의 지적이다. 종파간의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전 아랍세계를 종파간의 갈등, 다시 말해 수니와 시아파 간의 거대한 충돌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8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전해진 온갖 유혈사태- 이집트에서의 시위대 발포에서, 잇단 자동차 폭탄 공격, 그리고 화학무기사용 등등-는 바로 그 불길한 사태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도 아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도 아니다. 아랍-이슬람권 전체를 아우르는 종파간의 대결 양상이 세계평화에 최대 위협이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의 지적이다.
사이크스-피코협정에 따른 중동의 구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이슬람이스트 세력 대두와 함께 과거의 국경선은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거대한 전열이 형성되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수니와 시아파 간의 거대한 파워 투쟁이다.
그 무력 시범장이 시리아다. 서방이 개입을 꺼렸다. 그 틈을 타 시리아는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무대가 됐다. 게다가 서로 이해가 다른 온갖 과격 무장 세력도 이곳에 총집결했다. 적대관계인 그들이 일단 한 배에 타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전 아랍권이 동요하고 있다. 레바논, 요르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라크도 곧 다가올 내전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 내의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 파국을 향해 나가는 중동사태를 두고 한 전문가가 한 말이다.
그러면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사태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을까. 외부 개입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베테란 외교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리아사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필수 옵션이 됐다. 레드라인을 넘을 때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잇단 공언이다. 그 레드라인을 아사드 정권이 넘었다. 수퍼 파워로서 그 말 감당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수순은 그러면 어떻게 펼쳐질까. 아직 두고 볼일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제 44대 미국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평가가 거기에 달렸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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