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는 장거리 출퇴근을 했다. 우리 신문사가 있는 LA 한인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지역에 살았다. 일종의 ‘맹모삼천’이었다. 안심하고 아이들을 보낼 공립학교를 찾다보니 교외로 나가게 되었다.
학교와 관련해서 ‘안심’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보통 짚는 것은 학력과 안전이다. 교육의 질이 좋은 곳, 갱 등 불량 청소년들이 별로 없는 곳 - 부모로서 당연한 관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안심’하기 위해서 그 지역 학교 학생들의 평균성적이나 청소년 범죄율까지 알아보지는 않는다. 주변 동네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피부색이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부색에 의거한 차별과 분리를 통탄한지 50년, 그가 꿈꾸던 인종적 평등에 미국은 얼마나 다가갔는지 분석이 활발하다.
두 가지 현실이 지적된다. 첫째는 킹 목사도 믿지 못할 눈부신 성과이다. 그가 사자후를 토하던 바로 그 자리에 흑인 대통령이 서서 그를 기념할 줄은 킹 목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권법과 인종차별금지 정책들이 이뤄낸 밝은 현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징하는 현실이다. 인종에 근거한 유리천정은 깨어졌다.
하지만 변화와 희망을 증거하는 현실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옛 노예들의 아들들과 노예주의 아들들’이 함께 둘러앉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이다. 법은 차별을 금지했지만 법보다 강고한 장벽이 들어섰다. 소득에 따른 주거지역의 분리이다.
사우스센트럴에서 태어난 아이가 베벌리힐스 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은, 집값이 아무리 싸다한들 우리가 사우스센트럴에 집을 살 가능성 만큼이다 낮다. 근본요인은 소득이지만 빈민가와 부촌을 구성하는 인종이 확연하게 다르니 눈에 보이는 결과는 인종 간 분리이다. ‘흑인 동네’ ‘백인 동네’라는 말에 우리는 익숙하다. 50년 전 흑과 백이 지금은 흑·라티노와 백·아시안으로 갈렸을 뿐이다.
1963년 8월28일 워싱턴 대행진의 공식 명칭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이었다. 일자리 즉 경제적 평등 없이 자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경제적 기회에 있어서 킹 목사의 ‘꿈’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은 소득 격차이다. 2011년 기준 흑인의 가구당 중간소득은 4만달러 정도로 백인가정 소득의 58%에 불과하다. 지난 30년 사이 격차가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고용시장에서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이 큰 원인이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조건이 비슷해도 이름이 흑인 비슷하면 인터뷰 하러 오라는 전화가 별로 걸려오지 않는다. 범죄기록 없는 대졸 흑인남성이 취업시장에서 받는 대우는 감옥에서 갓 나온 고졸이하의 백인 남성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소득은 거주 지역을 결정하고 빈곤지역의 교육수준이 떨어지면서 저학력 - 저소득의 대물림은 계속된다. 미국의 문제는 빈곤이 인종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과 라티노 어린이들의 2/3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란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학생들도 2/3가 저소득층이다. 한편 라티노 학생의 80%, 흑인 학생의 74%는 유색인종이 대다수(50~100%)인 학교에 다닌다. 백인이 한명도 없거나 1% 미만인 사실상 ‘인종분리’ 학교에 다니는 흑인·라티노 학생들도 15%나 된다. 반면 백인학생들은 보통 전교생의 3/4이 백인인 학교에 다닌다. 흑백 분리는 생각보다 깊다. 인종적 편견이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배경이다.
최근 한 백인여성 칼럼니스트가 아들을 입양한 경험을 소개했다. 흑인남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심한 지를 말하는 글이었다. 그에 의하면 입양기관이 가장 애를 먹는 것은 흑인 사내아이 입양이다. 입양을 원하는 가정 중 흑인도 괜찮다는 가정이 14%에 불과하고 흑인 사내아이도 괜찮다는 가정은 거기서 더 줄어든다. 흑인 사내아이를 기피하는 이유는 “커서 범죄자가 될까봐 …”라는 것이다.
그 칼럼니스트는 6개월 된 흑인 사내아기를 입양했는데 담당 소셜워커가 몇 번을 다짐했다고 한다.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흑인 사내아이는 커서 흑인 남자가 됩니다. 괜찮으시겠어요?”법과 제도는 저만치 가있는데 우리들의 의식은 아직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워싱턴 대행진’은 계속 되어야 하겠다. 불평등 사회는 불안정한 사회이다. 언젠가를 대가를 치르게 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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