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스러지듯, 여리디 여린 몸들이 스러졌었다. 지난 연말 코네티컷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이다. 순진무구한 여섯 살짜리 어린이들이 정신질환 청년이 쏘아댄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졌다. 이슬같이 맑은 그들 20명의 죽음 앞에서 미국은 경악했었다.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그로부터 8개월, 충격은 잊혀지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규제되지 않은 총기를 집어들고 정신질환자가 또 다시 학교를 습격했다. 지난 20일 조지아의 애틀랜타 인근 초등학교에 마이클 힐이라는 백인청년이 AK-47 소총을 들고 들이 닥쳤다.
샌디 훅과 판박이 같은 상황,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 폭발했을 수도 있었을 청년의 광기와 분노를 한 교직원이 차분하게 막아낸 덕분이었다. 앤투아넷 터프라는 흑인여성은 이번 주 미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극한의 위기상황에서 그 여성이 어떻게 범인을 투항시켰는지는 이 시대, 미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기협회의 처방처럼 범인보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한 총기로 맞섰기 때문이 아니다. 뛰어난 호신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기는 말이었다. 진심을 담은 말이, 오랜 시간 아무도 두드려주지 않던 청년의 마음을 두드리자 청년은 빗장을 열었다. 마음을 열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범인이 들어왔을 때 서무직원 앤투아넷은 입구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청년은 죽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자였다. “도무지 살 이유가 없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다”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죽을 태세인 범인에게 그는 말을 걸고 이야기를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상황이 있다”며 그 자신의 아픔, 33년 같이 살던 남편이 최근 떠나버렸고, 아들은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떠났을 때 자살을 생각했지만 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당시 상황은 911 전화에 그대로 녹음되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녹음을 들으며 앤투아넷의 용기있는 대처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총을 들고 학교로 들어오던 순간의 청년과 경찰에 순순히 투항한 반시간 후의 청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앤투아넷과의 대화로 마음이 좀 누그러진 후 청년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회에서 그는 누구하고도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앤투아넷은 “내가 듣고 있지 않느냐, 너를 사랑한다”며 엄마같이 그를 다독였다.
누군가와 연결되는 느낌, 그 든든하고 푸근한 느낌이 정신질환으로 황폐한 청년의 마음을 녹여준 게 아닐까. 고립과 단절로 너무 많은 영혼들이 망가지는 것이 이 사회의 근원적 문제이다.
인간은 사자처럼 강하지도 독수리처럼 빠르지도 않다. 약한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집단의 힘 덕분이라고 한다. 혼자 대처하는 대신 집단을 형성해 함께 사냥하고 함께 방어한 것이 인간종족의 생존비결이었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그런 진화의 산물이라고 사회신경과학자들은 말한다. 배가 고플 때 위에서 신호가 오는 것처럼 홀로 있을 때 외로움이라는 통증 같은 신호가 오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감 즉 ‘관계’는 ‘밥’ 만큼이나 삶에 필수적인데 그 관계의 단절이 심각한 수준이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연구가 있었다. 지난 1985년 조사에서 미국인들은 그런 대상이 3명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20년 후 그 숫자는 한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대답이 25% 였다. 4명 중 한명은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존재들이라는 말이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없는 고립상태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장기화하면 반사회적 행동이나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초등학교에 총 들고 들어가는 묻지마 범죄의 주인공들이 그런 케이스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사람’이 필요하다. 애틀랜타 초등학교의 여직원이 한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제도적 총기규제, 정신질환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 모두 해야 할 몫이 있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것, 그 마음의 문을 자주 두드려 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들이 늘어나면 백약이 무효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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