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과묵하다. 청와대 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 때는 준비된 ‘말씀’을 장시간 읽어 내려가고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챙기는 선생님 스타일이지만 정작 정국 현안들에 대해서는 망부석 같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너무 말을 아끼다 보니 대통령이 가끔 던지는 몇 마디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온갖 다양한 해석을 낳곤 한다.
이런 과묵 스타일은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를 형성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자리에 과묵함은 선이 아니다. 국기를 흔드는 대형 악재가 터지고 있는데도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대통령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한다.
또 대통령은 선친의 영향 때문인지 군인들에 대해 무한 애정을 드러낸다. 정권의 국방 안보라인은 4성 장군 일색이다. 안보실장과 국정원장, 국방장관, 경호실장이 모두 대장 출신들이다. 국방장관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안보라인까지 군 출신 일색으로 채운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군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강성이다. 비슷한 배경과 색깔의 참모들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일방적 조언에 경도될 우려가 높다. 대통령은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리이다. 지금의 진용으로 보면 대통령이 균형감각을 제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대통령은 노인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임명한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비서실장을 갈아치우고 아버지 시대의 인물을 새 비서실장에 앉혔다. 워낙 노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니 노인들을 우대해야 한다는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 비서실장의 취약점은 74세라는 물리적 나이가 아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보여준 언행이 21세기 패러다임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시대정신보다는 구시대 인물의 노회함과 가치의 동질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의중이 읽힌다.
지난 6개월 동안의 박 대통령 스타일은 한마디로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드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장 출신들과 노회한 참모를 병풍처럼 주위에 포진시킨 것은 이것을 노린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여성이지만 남성 못지않은, 아니 남성보다 더 강력한 지도자라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런 행태는 국가 지도자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아들 부시 대통령도 강성의 구시대 인물들을 좋아했다. 부시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것을 ‘노출불안’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출불안은 자신이 행여 약한 존재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런 심리를 가진 지도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려 든다.
정말 강한 지도자는 강한 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을 경우 이를 당당하게 시인하고 사과할 줄 안다. 시인과 사과가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국기문란 사태가 드러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대통령은 단 한 차례 국정원의 셀프개혁을 주문했을 뿐 일언반구 말이 없다. 사과 요구도 못들은 척하고 있다. 대선 직전 후보토론회에서 댓글 공작을 한 국정원 여직원을 ‘절대 무죄’라고 두둔하며 상대후보를 공격하던 모습을 수많은 국민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런 무책임한 발언이 선거승리에 대한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경솔함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정원이 ‘절대 유죄’인 것으로 드러난 이상 대통령의 사과와 철저한 개혁 약속이 뒤따라야 하는 건 당연하다.
박 대통령이 정말 강한 지도자, 성공한 지도자로 남고 싶다면 우선 사람 쓰는 일부터 되돌아 봐야 한다. 국방 안보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집단사고의 함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준비된 원고나 프롬터를 들여다보며 하는 말은 줄이고, 국민들의 눈을 바라보고 하는 말은 늘려가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할 일이 있으면 설득하고, 해명할 일이 있으면 해명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를 국민들은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그런 신뢰에서 강력한 리더십은 자연스레 생겨나는 법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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