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침침해져 글씨가 가물가물해 보이는 것이 핑계인지는 몰라도 이번 여름 워싱턴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 논픽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우리 수도’(This Town)란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 몇 칼럼니스트의 서평에 의하면 워싱턴 포스트의 정치부 기자이다가 뉴욕 타임스로 간 마크 레이보비치가 쓴 그 책은 미국의 통치 계급(Ruling Class)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담고 있단다.
워싱턴 연방정부 무대에서 출세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줄대기(networking), 면종복매(面從腹背)의 우정, 그리고 선정주의적인 미디어에 대한 실명을 사용하는 일화들이 줄줄이 열거되어 있는 가운데 미국 정가의 부패와 역기능에 대한 우울한 메시지가 그 책의 근간을 이룬다는 평이다. 특히 파리드 자카리아의 그 책에 관한 칼럼을 보면 미국의 영구적 정부는 어떤 당이나 입법, 행정, 사법부 중 하나가 아니라 연방 정부의 금고들 부근에 편안하게 진치고 있는 로비스트들의 직업 집단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워싱턴은 미 전국에서 최고로 부유한 도시가 되었으며 지난 5년 동안의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이후의 최대 경제 위기 중에도 워싱턴의 경기는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다. 레이보비치의 그 책은 돈이 권력보다 우위에 서게 된 수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상원의원이든 의회 직원이든 간에 누구나 간절히 추구하는 것은 정부를 떠난 후의 수입원인바 그 열쇠를 바로 로비스트들이 쥐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1974년에는 연방의회에서 은퇴하는 사람들 중 3%만이 로비스트가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퇴임하는 하원의원들 중 42%, 그리고 상원의원들 중 50%나 로비스트로 둔갑한다는 어떤 잡지의 기사가 인용되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입법 과정이 부패되어 악법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입법안을 보더라도 수천가지 선물이 담겨 있는 긴 문서란다.
자카리아는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는 실례를 든다. 1913년에 연방준비은행을 창설한 법은 불과 31페이지였다. 또 1933년에 통과된 은행을 규제하는 법은 37쪽에 불과했다. 그 법의 현대판인 2010년의 법은 849쪽이고 시행령은 수천 페이지에 달한다. 입법안들이 그처럼 방대하게 된 이유는 입법 규제 대상들이 로비스트들을 동원하여 갖가지 예외 조항들과 면제 조항들을 삽입하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은 1년에 약 35억달러를 풀어쓴다는 추산인데 그들이 정부예산으로부터 고객들을 위해 끌어오는 돈 액수는 3조5,000억달러라니까 엄청난 수익률인 셈이다.
‘우리 수도’의 저자가 현재의 워싱턴 주민들의 물질 욕이 특별히 강하다고 암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자카리아의 입장이다. 과거에 비해 제도가 변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지난 40여년동안 극적으로 달라진 선거에 있어서의 돈의 역할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어느 정치학자는 하원의원들이 활동하는 5일 중 3일을 선거기금을 모으는데 소모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의원들은 선거기금 기부자들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투표한단다.
의회 정치의 본산인 영국과의 비교가 두드러진다. 2010년 영국 하원 총선거의 비용은 8,600만달러에 불과한데 2012년 미국의 선거에는 그것보다 거의 75배인 63억달러가 소모되었다는 것이다. 정치 과정에서 돈을 배제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주문이니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의회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비관론을 자카리아는 피력한다. 즉 세법을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현행 세법을 수천가지 특별 면세, 공제 등이 들어있어 로비스트들의 활동으로 해당 기업들이나 산업들 및 심지어는 억만장자 개인들까지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화된 합법적인 부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법 개정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있다. 예를 들면 일 년에 700억달러쯤 정부에 손실을 끼치는 모기지 이자 공제 제도를 개혁해서 없애고자하면 주택 건축업자들, 부동산 중개인들 그리고 은행들이 줄줄이 반대할 것이다. 인간사회에서의 정치와 부패와의 함수는 피할 수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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