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오는 말이 있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 이다. 더 이상 30대가 아닌 우리가 아이들의 성적을 두고 ‘머리’ 이야기를 할리는 없다. 이미 서른 전후로 접어든 자녀들의 지금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친구들을 보면 부부 둘 다 일류대학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자녀가 대학진학, 취업 등에서 낙오자가 된 케이스가 의외로 많다. 자녀가 둘이나 셋이면 보통 하나는 부모에게 근심거리이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그래서 기대가 있었는데 … 웬일인지 나이에 맞게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어디에서 잘못된 것이었을까?” 친구들은 서로 하소연을 한다.
‘머리는 좋은 데…’는 자녀의 성적 걱정을 하면서 한인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좋은 머리로 조금만 노력하면 (공부를) 잘 할 텐데 … 그걸 안 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속을 끓인다. 학교가 개학하고 새 학년이 시작된 지금 학부모들은 다시 본격적인 씨름을 앞두고 있다. 아이가 공부에 열심을 내도록 때로 달래고 때로 다그치는 끝없는 신경전이다.
우리 친구들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녀를 키웠는 데, 어떤 자녀는 기대대로 컸고 어떤 자녀는 뒤쳐졌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똑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유전자 받은 아이들이 왜 이렇게 다를까.
LA 3가 초등학교의 수지 오 교장은 학업성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유전적 요인 보다 학업에 임하는 아이의 마음가짐,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공부를 파고드는 아이를 당해낼 수는 없다. 그러니 아이의 ‘노력’을 칭찬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부모들의 뒤늦은 후회를 짚어보면 원인은 대개 자녀를 기르던 어느 과정의 방심이다. 방심을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가 ‘머리와 성적’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 했는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성적이 떨어졌다”는 케이스들이다. 머리 좋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성적이 우수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학과목을 쉽게 따라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머리’로 버티는 것이 잘해야 초등학교 때까지라는 것이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노력이 필수인데 노력하는 버릇이 들지 않은 아이는 이때부터 흔들린다. 부모는 부랴부랴 아이의 공부를 닦달하고 시기적으로 사춘기와 맞물린 아이는 이에 엇나가면서 문제가 깊어지기도 한다.
3가 초등학교는 한인 등 아시안 학생이 50% 유태인 등 백인 학생이 30%를 차지한다. 한인 학부모들과 유태인 학부모들이 쉽게 비교되는 환경이다. 두 그룹의 다른 점을 오래 관찰해온 오 교장은 유태인 부모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자녀의 시험 결과에 대한 태도이다.
한인부모들의 최대 관심은 점수. “몇 점 맞았니?” 그리고 나면 다음 질문은 다른 아이들의 점수이다. 유태인 부모들도 점수를 묻는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은 “최선을 다했니?”이다. 아이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점수 자체보다 중요시 한다. 아이는 노력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이때 한인부모들이 방심하는 그룹은 노력하지 않고도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 소위 머리 좋은 아이들이다. 부모가 점수만 보고 만족하니 아이는 노력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한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재미를 붙이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버릇을 길러야 할 중요한 시기에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내년부터 캘리포니아의 교과과정이 대폭 바뀐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45개 주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교과 내용으로 공부를 하고 완전히 새롭게 바뀐 학력고사로 평가를 받는다. 이제까지의 암기식 사지선다형 시험이 아니라 짧은 에세이 등 주관식 시험으로 바뀐다. 사고력과 판단력, 발표력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정보화 시대에 맞는 시민으로 키우겠다는 취지이다. 초등학교에서도 앞으로는 ‘머리’만으로 우수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주어진 내용을 달달 외우면 되던 데서 보다 통합적인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머리는 좋은 데’는 ‘키는 큰 데’ 만큼이나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노력과 성취의 기쁨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관리를 잘 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매사에 책임을 다하는 버릇을 어려서부터 길러준다면, 그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면 그 인생은 순풍에 돛단 배가 될 것이다. 성인자녀를 보며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후회하지 않으려면 초등학생 때, 그 여린 나이에 버릇을 확실히 잡아주는 것이 비결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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