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劉禪)은 유비(劉備)의 아들로, 촉한의 2대 황제다.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에서 유선을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주색잡기에 빠졌다. 그리고 위(魏)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결사항전도 없이 항복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유선을 우둔하고 암약한 군주로 평가한 것이다.
왕은(王隱)의 ‘촉기’(촉記)에 나오는 평가는 이와 전혀 다르다. 유선을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상반된 평가를 하고 있나.
혹시 천치가 아닐까-. 김정은 관련 북한 발 보도를 접할 때마다 문득 문득 스쳐온 생각이다.
청소년기 승마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산일대에 스키장 등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하라는 독려를 한다. 대다수 북한 어린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부진상태에 있다. 아니, 굶어 죽어가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이다.
안보와 관련된 그의 발언 역시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다. 몇 달을 끌었던가. 대한민국에, 미국에, 전 세계에다 대고 북한이 독한 말을 마구 쏟아냈던 것이. ‘최고 존엄’이라는 김정은은 그 과정에서 할 말 못할 말을 다 뱉어냈던 것이다.
김정은의 그 발언, 그 행보에서 뭔가 한 가지가 엿보여진다. 일종의 중증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증세라고 할까. 그래서 스치는 생각이 천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한동안 뜸했다. 그러던 김정은 관련 보도가 또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6.25 정전 60주년을 기점으로 해서다. 그 하나는 김정은이 6·25 참전 중공군 전사자 묘지를 참배하는 모습이다.
아버지 김정일은 외면했었다. ‘중국인민지원군열사릉원’으로 불리는 중공군 전사자 묘지를 말하는 거다. 모택동(毛澤東)의 아들 모안영(毛岸英)도 묻혀 있는 그 묘지를 김정은은 찾아갔다. 그리고 헌화하는 모습을 북한 관영매체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나온 보도는 김정은이 전승기념일(7월27일 정전협정 체결일)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한 리위안차오 중국국가 부주석의 숙소를 직접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다. 말 그대로 최고 존엄이다. 그 최고 존엄이 오히려 알현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무엇을 말하나.
“북한을 하나의 독립국가로 보았을 때 최근 북한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언행은 국가이성을 상실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미국을 핵무기로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에다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욕설을 해대던 지난 봄 한 한국 내 학자가 한 지적이다.
쉽게 풀이해 이런 말이다. 백번 양보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하는 수단이라고 하자. 그 하는 짓마다 그런데 망할 짓이다. 그 북한의 행태에서 도덕적 정당성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추구하는 것은 김씨 왕조의 안전뿐이고, 인민의 삶과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 북한이 한 국가로서 존재의 이유가 과연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존재의 이유를 찾기 힘들다’-. 국제사회의 대다수가 보이고 있는 시각이다. 예외가 있다. 중국이다. 중국이 보기에도 북한은 끔찍한 존재다. 그러나 더 끔찍한 사태는 그 북한이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 경우 미국과 동맹인 대한민국과 국경을 맞대게 된다. 그 상황을 악몽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전략이 ‘완충지대로서 북한’으로, 끔찍한 북한이지만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중국의 시각이 그런데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환점을 이룬 시기는 천안함 사태에, 연평도 포격 등 사건을 저지르고 김정일이 사망을 얼마 앞둔 시기였다는 것이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다.
2011년 초 베이징의 중난하이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가 소집된 것이다. 이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는 한반도 정책 열쇠를 쥔 중국의 최고결정기구다. 이날 회의에는 싱크탱크를 비롯해 중국내 주요 한반도 전문가들이 대거 초청됐다.
기존의 북한정책에 대한 비판 쏟아져 나왔다. 완충국가 논리에 갇혀 미국과의 관계, 한국과의 관계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출범한 것이 김정은 체재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것은 중국의 신지도부는 북한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모택동 아들이 묻혀 있는 묘소를 참배한 것도 모자라 서둘러 중국 특사의 숙소까지 찾아갔다. 명색이 최고 존엄이. 그리고 개성공단재개문제에 북한은 꼬리를 내렸다. 왜.
‘그 존재이유를 잘 모르겠다’-. 김정일 왕조에 대해 중국의 지도부마저 점차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시각이다. 그 싸늘한 시선에, 냉엄한 현실에 뒤늦게 화들짝 놀란 것이 아닐까.
왜 유선에 대해 ‘촉기’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을까. 대세를 깨달았다. 군주는 자신의 안위보다 백성의 안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대세를 망각하고 전쟁을 선택해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놓는 것은 폭군이나 할 짓이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김정은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중국의 요구대로 개혁개방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핵에, 선군(先軍)을 계속 고집할까. 김정은이 유선을 반이라도 닮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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