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명한 사진작가 중 조세현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인물을 찍는 작가이다. ‘조세현의 얼굴’이라는 포토 에세이집을 냈을 정도로 사람의 얼굴에 그는 집착한다. 유명 배우? 모델들의 사진을 찍어 1990년대 최고의 패션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입양아, 장애인, 중국의 소수민족 등 소외된 이들을 렌즈에 담으며 ‘얼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사진작가로서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가 단골로 하는 대답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누구나 밥 먹듯 사진 찍는 세상에 어떤 사진은 그냥 사진이고 어떤 사진은 작품일까. 똑같은 얼굴을 찍어도 눈에 보이는 모습 이상의 뭔가가 담겨 있을 때 작품이 된다. 그 작업을 그는 ‘마음을 훔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만의 고유한 에센스를 잡아내는 것, 그 내면의 세계를 사진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내면은 내면에 가서 닿는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얼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가슴으로 보며 감동을 느낀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라던 헬렌 켈러의 말은 사실이다.
보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내면에서 나올 때 힘이 있다. 작곡가들은 보통 작곡을 할 때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음을 들어보곤 한다. 19세기 독일의 낭만파 음악가 슈만은 곡이 완성될 때까지 절대로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면의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라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벌써 절기로는 가을이다. 지난 7일이 입추였다. 돌아보면 특별히 한 일도, 이룬 일도 없는데 항상 바빴고 항상 번잡했다. 월요일인가 하면 금요일, 7월인가 하면 8월 … 주 단위로, 월 단위로 뭉텅 뭉텅 지나가는 시간을 허겁지겁 쫓다 보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하이텍 시대가 되면서 삶은 정말 번잡해졌다. 전화기 하나만 들고 있어도 볼거리, 들을 거리가 끊임없이 밀려든다. 지구 반대편 한국의 날씨부터 어느 배우의 사생활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SNS 친구들이 점심 때 어느 식당에서 뭘 먹었는지, 서비스는 어떻고 맛은 어떤지 … 시시콜콜 알려오니 작심하고 끊지 않는 한 한갓질 틈이 없다.
친구의 사돈의 팔촌의 손자 손녀의 소식까지 다 듣는 세상에 정작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이 있다. 각자 내면의 소리이다. 홀로 조용히 앉아 묵상하며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어본 것이 언제인가. 존재의 근원이 되는 내면의 세계와 너무 서먹해졌다. 바쁘고 번잡한데도 마음은 늘 공허한 이유이다.
내면의 세계와 소통하는 경험은 차단을 조건으로 한다. 외부로 향한 의식을 차단하고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소음을 차단해야 내적 경험이 가능해진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온전히 자기 자신에 몰입하는 어느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세상을 등짐으로써 외부세계를 차단했던 19세기 미국 시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자연스럽게 벗이 되었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에/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그래서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고/ 빛 너머의 빛을 본다”고 썼다<시 ‘자연에게서 배운 것’ 중에서>.
육체적 장애가 그 존재를 내면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들은 베토벤이 대표적이다.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대 중반부터 청력을 상실해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작곡에 몰두했다. 들리지 않는 귀, 그래서 영혼으로밖에는 들을 수 없는 내면의 소리에 몰입함으로써 그는 악성이 되었다.
‘빛 너머의 빛’을 본 인물로는 존 밀턴이 꼽힌다. 17세기 영국의 사상가였던 밀턴은 30대 중반부터 시력이 나빠지다가 43살에 완전히 실명했다. 어려서부터 눈이 약했는데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눈을 혹사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심한 좌절에 빠졌던 그는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고 ‘실낙원’ 등 대표적인 저서들을 실명 상태에서 펴냈다. “신이 세속의 빛을 가져가는 대신 성스러운 내면의 빛을 주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자연이 영글어 가는 계절이다. 쑥쑥 키가 크던 곡식들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열매를 익게 한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관심거리들로 번잡하던 우리의 의식도 가을에는 영글어야 하겠다.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의 안식처인 영혼 깊은 곳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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