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프랑스인, 일본인이 외계인과 마주쳤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던 차, 외계인에게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먼저 음식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인의 질문. “그곳에서는 아침으로 무엇을 먹나요?” 뒤이어 일본인이 물었다. “그곳 경제는 어떤가요?” 마지막으로 한국인이 질문했다. “그곳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쓰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꼬집는 유머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유명 인사들이 한국을 찾으면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미디어들은 유별난 관심을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에 출연한 영국 출신 연기파 배우 틸다 스윈튼이 지난주 방한해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예외 없이 이런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인 봉 감독과 한국인 스태프, 의사소통의 어려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지자 스윈튼은 “예술에 있어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국적에 관련된 질문은 그만해 달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스윈튼의 솔직한 답변에 네티즌들은 후련하다는 반응이다.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한국인과 한국은 훌륭하고 멋지다”라는 대답을 끌어내려 하는 미디어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들의 구태의연한 질문은 바로 이런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수용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것일 뿐이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특히 상대가 외국인일 때 이런 의식은 한층 심해진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들이 종종 예의와 실속을 넘어 과공으로 흐르는 것은 이런 과잉 의식증의 산물이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게 되면 삶이 피곤해 진다. 일상적인 옷차림에서부터 행동까지 일일이 “다른 이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고민하면서 결정하게 된다. 한국의 등산로를 가보면 최고급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야산을 오르는데 옷차림은 마치 히말라야를 오르는 전문 등반가들 같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필요 이상으로 차려입은 것이다. 이렇게 살면 체면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대가로 마음의 자유로움은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마음고생이 헛수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은 대부분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 입기에 민망할 정도로 아주 튀는 티셔츠를 한 학생에게 입혀 돌아다니게 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옷을 기억할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그 학생은 “48%가 기억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그가 만났던 친구들 가운데 실제로 그 옷을 기억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같은 실험을 한국에서 했더라면 두 수치 모두 올라가겠지만 나의 생각과 타인의 시선 사이의 간극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볼까 고민하며 외출이나 출근길의 옷을 고른다. 간혹 이 문제로 배우자와 다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평판과 평가에 대한 지나친 불안 때문이다. 이런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도가 낮다. 명품 마케팅은 흔히 이런 불안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타인시선 의식증’과 경제적 수준 간에 두드러진 상관관계는 없다. 잘 산다고 해서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이 그렇지 않은가.
한국정부가 직업별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직업으로 꼽힌 것은 사진작가와 작가, 작곡가, 바텐더 등 자유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만족도가 낮은 직업 1위와 2위는 남들이 가장 선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델과 의사였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의 대상이 되는 직업일수록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과도한 타인시선 의식증은 결국 문화의 산물이다. 한국사회의 문화가 그렇다 보니 구성원들도 자연스레 거기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이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타든, 또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한국에서보다 훨씬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에 건너와서까지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라는 낚싯바늘에 걸려 자기 삶에 상처를 입히고 힘들어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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