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 논설위원
12일 중복을 앞둔 후덥지근한 무더위 속에서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 풍경이 보고 싶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역대 최단기간 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연일 화제라고 한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2031년의 지구,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1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설국열차 안을 소재로 했다. 영화는 억압받는 열차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을 장악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을 담았다니 낭만적인 설국 풍경은 아니겠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개발된 냉각제가 성층권에서 기상 이변을 일으켜 빙하기(Ice Age)가 찾아왔다는 것이 영화 속 설정이다. 2004년에 나온 영화 ‘투모로우’도 지구온난화가 해양 열 순환을 끊어 소빙하기를 일으킨다는 학계의 가설 가운데 하나를 다루었다. 실제 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증가하고 세계 각지에 태풍과 가뭄, 폭염 등 기상 이변의 규모와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며칠 전에는 북극해의 얼음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33년 만에 절반 이상이 녹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이 52개 나라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거쳐 ‘2012년 기후 상태 보고서’를 인터넷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북극 해빙의 지난 해 9월 최소 관측치는 132만 제곱마일로 1980년 수치인 290만 제곱마일의 45.5%로 그쳤다고 한다.
33년 사이에 한반도의 18배, 미국 면적의 약 42%에 달하는 얼음이 사라진 셈이다. 바다에 빙하가 떠있는 북극 지역은 위도가 낮은 남쪽 지역보다 약 두 배의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다고도 한다.이제는 위대한 미국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도 달리 읽어야 할 판이다. 1936년에 발표된 그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서두는 이렇다.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 부근에는 말라서 얼어 죽은 한 마리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소설 속의 작가 해리는 아프리카 사냥 여행 중 가시에 다리가 긁혀 한쪽 다리가 썩어가고 있다. 그는 평생 야망을 품고 전쟁터와 이국을 떠돌며 살아왔고 돈 많은 애인을 지닌 지금, 모든 것이 이뤄지려는 찰나 죽음을 앞두고 있다. 표범의 죽음과 해리의 죽음을 빗댄 이 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무하고 절망적인 상황의 비극적인 인간을 다루지만 그 안에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다.
표범은 초원의 지루하고 나태한 평온보다는 끊임없는 모험, 도전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눈으로 얼어붙은 산 정상에 올라 비로소 사는 것처럼 큰 숨을 내쉬었을 수도 있다. 그러곤 곧장 얼어 죽거나 굶어죽었을 것이다. 망가지고 부숴지며 산산이 깨어질지라도 지치지 않고 맞서는 불굴의 용기이다.
가수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에서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은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5,895미터의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대책 없이 녹고 있다고 한다. 미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실의 조사에 의하면 2007년의 만년설이 1912년 조사당시 측정됐던 면적에 비해 85%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고 하니 20여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 갈 수 없던 극한 지대가 인간의 도전의식과 탐험정신으로, 또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실제로는 그곳 만년설 봉우리까지 표범이 결코 올라갈 수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소설 속 표범의 존재를 믿었었다. 그러나 ‘킬리만자로의 얼어붙은 표범’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않을 것같다.
온난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남극과 북극의 빙하, 아프리카 밀림, 아마존 숲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 문명에 지쳐서 자연 속으로 찾아갔던 고독한 이들은, 자신을 실험하고 고통의 극한을 넘어서고자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용감한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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