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새 달력을 보니 오는 7일은 입추이고 12일은 말복이다. 음력 6월에서 7월까지 있는 초복, 중복, 말복이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라는데 서울과 뉴욕은 위도가 비슷하여 날씨도 비슷하다. 그러니 뉴욕의 여름도 곧 물러갈 것 같다. 화씨 97도, 98도를 올라가던 폭염 속에서도 개미들은 열심히 일하여 겨울을 대비한 양식을 모았을 것이고 시원한 그늘 아래 노래하고 놀던 베짱이는 아무런 대책 없이 빈손일 것이다.
기원전 620년경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노예이자 이야기꾼이었던 이솝(Aesop)의 우화들은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여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삶의 지혜와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다. 이 중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2,500여년 세월을 내려오며 여러 버전이 나와 있다.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을 구하러 온 베짱이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혼내며 내쫒았다는 개미, 추운 겨울 벌벌 떨고 서있는 베짱이가 가여워 집에 들여 먹을 것을 나눠주자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베짱이, 최근에는 베짱이와 개미가 서로 타협하여 낮에는 개미처럼 일하고 밤에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생활을 하는 동반자의 삶을 사는 버전 등등...
베짱이는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개미들에게 노래를 들려줘 피곤을 풀어주고 노동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라는, 거꾸로 발상이 신선하다. 얼마 전에 본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데렐라도 기존의 신데렐라와 달랐다. 올 3월 3일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보인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스의 신데렐라(Rodgers and hammer stein’s Cinderella)는 요정의 지팡이에 호박이 마차로 변하고 생쥐들이 말로, 개가 마부로 변하고 구두를 매개로 왕자와 다시 만나는 것은 변함없지만 원작에 비해 많이 다르다.
계모와 의붓 언니들이 여전히 일을 부려먹고 신데렐라만 빼놓고 자기네끼리 파티에 가긴 하지만 손위 언니와는 서로 사랑에 대해 의논 하고 도움도 준다. 특히 12시 종이 울리자 마술이 풀리기 전에 신데렐라가 급히 가느라 유리 구두 한 짝이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뛰어가다 말고 돌아와서 손수 유리 구두를 벗어 왕자 손에 꼬옥 쥐어주는 장면에선 웃음이 팡 터진다. 신데렐라가 파티에 가는 것을 망설이자 주위에서 ‘가고 싶지? 꿈을 이루고 싶지? 그러면 가봐’하고 부추기며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 막연히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서구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17세기말~18세기 초 봉건시대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농민의 반란과 억압의 삶을 사는 민중들의 삶에 뿌리를 둔다. 17세기 프랑스의 샤를페로 판본과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 판본이 조금씩 다르고 현대에 와서는 디즈니와 브로드웨이 버전이 또 다르다.
만일 신데렐라가 힘든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면 요정이 나타나 도와줄 필요가 없었고 유리 구두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데렐라는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무도회에 잿더미를 털어내고 참가하는 희망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유리 구두를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손수 왕자의 손에 꼬옥 쥐어주는 거꾸로 발상이 재미있다.
지난 80년대 후반, 거꾸로 읽은 세계사, 거꾸로 보는 고대사 등의 역사책들이 출간되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반전, 새로운 시각은 평소의 생각과 관념을 뒤집어 보인다는데 묘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형식의 틀을 깨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광고를 하는 사람이나 예술가에게는 특히 이런 역발상이 필요하다. 그동안 성공을 거둔 비즈니스 중에는 역발상 마케팅이 많다. 비단 아이디어 면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이 거꾸로 방식에 적용시켜 보자.
일이 왜 이리 꼬여 싶으면 일이 잘 된 상황을 상상해보고 상대방이 미우면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가지 않을까. 물론 거꾸로 본 것이 다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명제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야할 것이다. 요즘 사는 것이 ‘내 힘들다’ 싶으면 거꾸로 읽자. ‘다들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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