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습기마저 높아 무덥다. 한국의 날씨다. 무덥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아예 불가마의 날씨다. 무엇을 예고하는지 폭염은 8월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폭염의 계절이다. 게다가 오욕과 피로 점철된 과거의 역사가 상처로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그래서인가. 내셔널리즘의 광기가 번뜩거리는 계절이 동아시아의 8월이기도 하다.
2013년 8월 동아시아는 또 한 차례 이상열파의 정치적 기류에 뒤덮이는 것은 아닐까.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동시에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이제는 양의 탈을 벗어던지고 늑대의 모습을 들어 낼 것이다.”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도 장악했다. 지지율이 70%에 이른다. 가히 폭발적 기세라고 할까.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이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 지도자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거리낌 없이 우파 어젠다를 밀고 나갈 것이다. 이런 관측과 함께 온갖 우려가 제기된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재검토는 물론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 평화헌법을 폐기할 것이다 등등.
자민당 아베 정권은 그러면 거침없이 우향우의 길을 갈 것인가. “참의원 선거 압승은 우파 어젠다를 유권자들이 지지해서가 아니다. 단지 경제를 살리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아베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당시 일본 무라야마 총리가 각의 결정에 따라 태평양 전쟁과 그 이전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공식 사죄한 담화)를 무효화 하는 듯 한 발언을 해왔다. 그걸 지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게 참의원선거에서 드러난 일본 유권자의 표심(票心)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것은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의 정치적 사망이다. 전시 위안부의 필요성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 망언에 한국이, 중국이, 또 전 세계가 분노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인의 70%가 하시모토 망언에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으로, 이와 함께 내셔널리즘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일본의 유권자 정서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일본은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과거 군국주의의 만행을 부인하는 우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양심적 학자, 시민단체가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것이 일본이다. 바로 이 점을 뉴욕타임스는 지적한 것이다.
“무엇이 일본의 진정한 힘일까. 독일과 영국 두 나라의 경제력을 합친 것 보다 더 큰 세계 제 3위의 GDP인가. 그보다는 깨어 있는 시민, 특히 NGI(Non-Government Individual)로 불리는 깨어 있는 양심의 행동파 시민과 시민단체들이다.” 한 일본문제 전문가의 지적이다.
일부 우파 정치인들이 날뛴다. 과거사를 잊은 그들의 망동에 이웃 나라가 분개한다. 이 정황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게 바로 깨어 있는 일본의 시민들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파 정치인들의 망언은 계속된다. 그 가운데 그 참상을 젊은 세대에 알리고 국제적 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 선 사람은 와타나베 미나라는 일본 여성이다.
망언은 계속되고 있다. “헌법 개정에 있어 나치 독일의 수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부총리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전시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남가주 글렌데일 시에 세워졌다. 그러자 관방 장관이란 사람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베의 발언이다. 8월15일, 일제가 패망한 이 날 아베를 비롯한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 발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은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한 아베의 말에서 그 답은 찾아지는 것 같다.
이는 다름이 아니다. 경제에 전념해라. 그리고 이웃 나라를 배려하라는 유권자의 무언의 외침에 순응한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의 경제 정책에는 압도적 다수가 찬성했다. 반면 헌법 개정에는 55%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제의를 한국정부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가 일본이다. 그리고 소리 없는 다수인 일본의 보통사람들의 염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지탱해온 것은 한-미-일 공조다. 그 한-미-일 공조의 소리가 어느 틈에 한국에서 사라졌다. 대신 들리는 것이 한-미-중 공조다. 너무 성급하다.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감정적인 반일(反日)은 당장은 후련할지 몰라도 국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멀리 또 크게 볼 필요가 있다. 8월이다. 이 8월이 또 한례의 뜨거운 계절이 될지, 쾌적한 나날이 될지는 두 나라 지도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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