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경제를 주창해 주목받고 있는 젊은 학자 라즈 파텔은 “신이 전쟁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지리를 가르친다면, 경기침체는 모든 이에게 약간의 경제학을 가르치는 신의 방식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신은 경기침체를 통해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미증유의 금융위기가 닥친 후 탄식과 자성의 바람이 경제계, 특히 세계금융을 좌지우지해온 월스트릿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지만 정작 이들의 밑바탕 의식은 위기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월스트릿의 초대형 기업들은 윤리와 가치, 정직 등을 내세우며 환골탈태를 선언했지만 탐욕의 문화는 그대로이다.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중개인, 인베스트먼트 뱅커 등 월스트릿 종사자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가 지난주 발표됐는데 결과가 놀랍다. 4명 중 1명꼴인 23%가 “직장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밝혔으며 24%는 “1,000만달러 이상을 챙겨 빠져 나갈 수만 있다면 인사이드 트레이딩을 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경력 10년차 미만 응답자 중 38%가 이처럼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월스트릿의 장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월스트릿의 인재들은 대부분 명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MBA 과정을 마친 엘리트들이다. 이미 충분한 경제적 처우를 받고 있는 이들이 선배세대보다 오히려 더 이런 탐욕의 문화에 깊숙이 물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를 정확히 밝혀내려면 대규모 심층 조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20011년 하버드대학이 실시한 한 연구결과에서 하나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버드대학 연구의 결론은 현재의 경제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탐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까지 할 수 있다는 의식을 알게 모르게 심어준다는 것이다. 개인이익의 극대화는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수십 년 간 경제학을 지배해 온 화두이다.
시장 만능주의 트렌드 속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으려는 욕망을 가진 ‘호모에코노미쿠스’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학문이 됐다. 이런 경제학의 바탕이 된 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의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모든 이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보이지 않는 조정작용에 의해 사회 전체 이익이 균형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의 옹호자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것은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오해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단 한 차례 사용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소수의 부문별한 사익추구가 다수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 줄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하고 법과 사회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인간들이 멀리 내다보지 못한 채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 들며 그래서 실수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주로 ‘열정’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여러 과학적 실험들은 스미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하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월스트릿보다 더 생생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월스트릿은 마치 중병에 걸렸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희귀 증세인 ‘질병인식 불능증’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환자에게 자발적인 치료는 기대할 수 없다. 목숨을 살리려면 강제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경제학 지식이 모자라 생긴 것이 아니라 너무 넘쳐나서 생긴 질환이다. 그러니 경기침체를 통해 깨우쳐야 할 것은 그저 약간의 경제학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경제학이어야 한다. 이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어리석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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