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대통령을 논한다. 그럴 때 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미국의 대통령 중 하나가 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다. 상당한 기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대공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경제위기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단임으로 물러났다.
그 후버 대통령의 노년 시절, 장래가 촉망되는 한 대권주자 형 정치인이 그를 만난다. 그리고는 ‘정치적 현인’(賢人)으로서 그의 지혜와 면모에 큰 감동을 받는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리처드 닉슨이 그 정치인이다.
58세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90세까지 살면서 후버는 ‘전직 대통령’으로 데뷔하는데 성공한다. 당파를 초월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에 설립된 후버도서관에서 집필 생활 등을 통해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47년 그와 반대진영에 속한 트루먼 대통령은 후버를 전후 사업을 위한 특별위원회 의원으로 위촉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비슷한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지혜에 의존했다. 그의 말년 후버는 ‘정치적 현인’으로 워싱턴 안팎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닉슨의 말에 이제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미 헌정사상 최악의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백악관을 떠났다. 37대 닉슨 대통령이다. 그 때가 1973년이다. 10여년 후 어느 날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같은 헤드라인 달았다. ‘닉슨, 전직 대통령 직에 출마, 당선’-.
거짓말쟁이로 매도됐었다. 그 닉슨이 꾸준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그의 경륜, 특히 ‘핑퐁외교’란 신조어까지 만들게 된 그의 외교적 경륜에 다시 주목하면서 당파를 초월한 이 전직 대통령의 조언을 워싱턴 정가는 경청하게 된 것이다.
막말이 오간다. 정치가 혼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인간’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서슴없는 적대에, 막말, 저주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정치인의 언어사용에 대해 신중함을 주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낯 뜨거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낯 뜨거운 상황의 주인공은 전두환이다. 대통령을 지냈다. 그의 집에, 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수사팀이 들이 닥쳤다. 그리고는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도둑정치(kleptocracy)가 횡행하는 전형인 아프리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해괴망측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더 괴이한 것은 전두환의 숨겨진 비자금 강제징수 문제가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25년, 또 법정에 선지 16년 만에 본격적으로 불거졌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어딘가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감동도 없다. 그저 낯이 뜨거울 뿐이다.
대통령이 사실상의 적대국 수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평소 막말을 해대는 대통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에서의 발언내용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그렇게 저자세일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존엄이 마구 짓밟혔다. 동맹국인 미국을 적대국 같이 묘사했다.
그 노무현과 김정일의 정상회담 대화록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정국이 뒤집어졌다. 결국 진본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자 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6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기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소리도 들린다. 그 자료가 봉하마을로 보내졌다가 노무현대통령 지시로 폐기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기록물이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국가의, 국민의 소유다. 그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황당한 일. 거기서 뭔가 공통점이 찾아진다. 천박성이다.
닥치는 대로 돈을 먹었다. 그 돈을 숨겨 자손대대로 호의호식하려고 들었다. 명색이 대통령이.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탐욕에서 품격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몰려드는 것은 그 무지막지했던 ‘천민 우파 통치시대’에 대한 불쾌한 기억에 허탈감뿐이다.
은닉된 것이 돈은 아니다. 정상회담대화록이라는 기록물이다. 그런 면에서 뭔가가 다르다. 더군다나 노 대통령 지시로 폐기 됐는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예단은 금물이다. 이 해괴망측한 일련의 해프닝에서 그러나 악취 같은 것이 풍겨온다. ‘천민 민주주의’가 내뿜는 독소다.
대중 속에 숨는다. 그리고 떼거리를 지어 악을 쓴다. 거짓말도 예사다. 떼거리로 한 그 짓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용서되고 때로는 정당화 된다. 광우병 난동이 바로 그 경우다.
천민 우파 통치시대에는 권력자에 의해 법과 질서가 도전받았다. 천민 민주주의 시대에는 툭하면 떼거리를 지어 거리로 나서는 민중이 법질서 파괴자였다. 국가를 위해 천박은 금물이다. 천민민주주의는 나라의 재앙이다.
막말에, 보복에, 저주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정치권. 그 모습은 새삼 또 한 가지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정치가 천박한 패거리정치로 더욱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이 존경을 받는다. 국가의 원로로서, 정치적 현인으로서. 그리고 그가 한 말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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