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국 남부에서 탈옥한 죄수들은 자신들을 추격하는 사냥개의 후각을 교란하기 위해 도주로 곳곳에 레드 헤링(red herring)을 던져두곤 했다. 레드 헤링은 훈제 청어로 냄새가 지독하다. 탈옥수를 쫓던 사냥개는 레드 헤링의 강한 냄새에 방향을 잃기 일쑤였으며 죄수들은 그 틈을 타 추격에서 벗어났다.
레드 헤링은 옛 탈옥수들에게만 요긴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공격을 따돌릴 필요가 있는 세력들에게 레드 헤링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효과적인 도주 수단이 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안이 터지면 레드 헤링을 사용해 관심과 주의를 분산시킨다. 레드 헤링의 냄새에 혼란을 느낀 사냥개는 자기가 무엇을 추격하고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레드 헤링의 오류’이다.
‘레드 헤링의 오류’는 정치권력과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권력이 애용하는 대중 혼란 기법이다. 대중의 관심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제로부터 딴 곳으로 돌려 논점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물타기’로 불리는 본질 흐리기가 대표적이다.
물타기는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가 제기될 경우 다른 이슈를 교묘히 섞음으로써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핵심이 무엇인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법이다. 물타기를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종국에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 같다”는 양비론적 냉소주의가 생성된다. 그러면서 핵심적인 이슈는 사라지고 엉뚱한 논쟁만 지속되다 상황은 유야무야 돼버리고 만다.
한국에서 이른바 ‘국정원 게이트’가 터진 후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대응 방식과 보수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이런 ‘레드 헤링의 오류’를 노린 전형적인 물타기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이 드러나고 책임자가 기소되자 이들은 뜬금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라는 레드 헤링을 던져 국정원 게이트 물타기에 나섰다.
진실여부와는 관계없이 NLL은 이미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이 지난 해 한차례 이슈화 시켜 톡톡히 재미를 봤던 사안이다. 잘못된 학습효과 탓인지 이미 우려먹었던 NLL 카드를 또 다시 들고 나와 국기문란 사건의 희석을 시도하는 있는 것이다. 난데없이 국정원에 보관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관련 발언을 들먹이며 국정원 게이트를 야당의 탄압으로 교묘히 몰아가고 있다.
생뚱맞고 어처구니없는 억지논리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공세가 대중들에게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니 국정원 게이트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분의1에 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사찰이 터졌을 때도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 역시 사찰을 했다”고 공세를 펴며 물타기를 시도했다. 공격적으로 물타기를 한 결과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민간인 사찰을 청와대가 아닌, 야당 탓이라 여기는 응답이 더 많이 나오기까지 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한 것은 국기를 흔든 너무나 명백한 범죄행위다. 만약 미국에서 중앙정보보국이 국내 선거에 관여하고 특정 후보 당선에 도움이 될 만한 공작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것은 결코 정파적 이슈가 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언론과 시민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모습조차 요원하게 느껴진다. 부인하고 싶지만 인정해야 하는 우울한 현실이다. 한국의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레드 헤링 가공 기술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반면 이들이 의도하는 교란을 분별해 내야 할 대중의 후각은 그리 예민해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는 정치권력과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이런 조작과 왜곡에 계속 휘둘릴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정치꾼들과 일부 언론의 물타기에 걸려들어 국정원의 국기문란 범죄에 대해 판단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한국민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촘스키의 지적은 한마디로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결국은 조종의 대상이 된다. 국민들이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조작과 선동에 계속 넘어가는 한 비뚤어진 권력이 흔들어 대는 레드 헤링의 지독한 악취는 한국사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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