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80을 넘겼다. 아버지는 70을 채 못 살았고. 그 기대 수명치로 보면 그가 앞으로 살아갈 세월은 근 반세기에 이른다. 30이 됐을까 만가 한 게 그의 나이이니까.
그 앞으로의 세월에도 그러면 그 패턴은 주기적으로 계속 반복될까. ‘도발을 한다. 핵에, 미사일 시험에, 포사격을 해대면서. 그리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을 동원해 위협을 해댄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대화를 제의한다. 마치 평화가 당장에라도 임박할 것 같이’-.
김정일 시대에 내내 보여 온 수법이다. ‘벼랑끝 외교’라고 했던가. 그 가전(家傳)의 수법을 통해 김정은은 수령 독재체제를 계속 유지시키고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한 세상 살다가 평온한 임종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최룡해가 특사로 북경에 파견됐을 때 아시아타임스가 내린 전망이다. 3대 째 이어져오는 그 수법에 진력이 났다. 가장 참을성이 많은 중국조차 지쳤다. 이와 같은 지적과 함께 아시아타임스는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든지, ‘수령’이라는 자리에서 밀려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국내외적으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은 외적 압력이다. 미국의 새 안보전략 ‘아시아 회귀’ 다른 말로 해 ‘중국 회귀’가 그 외적 압력의 진원지로 아시아타임스는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단계(point of no return with Kim)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현상유지에 급급하다 보니까 극히 수동적이 됐다. 한반도, 북한 문제에 관한 종래의 중국입장이다. 그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중국의 국가 이해가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모종의 적극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동맹이다.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국의 낯빛이 달라졌다. 그 중국이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6월7일, 8일 양일로 예정된 오바마와 시진핑의 만남이다. 이 회담의 주 어젠다는 안보문제, 미국의 아시아 회귀가 된다.
이 정황에서 북한이 취해야할 태도는 무엇일까. 급격한 평화 공세로의 전환이다. 우선은 그 길만이 유일한 활로이니까. 아시아타임스의 지적이다.
포괄적인 경제협력에서 아시아 안보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간의 현안문제는 말 그대로 글로벌한 규모다. 바둑 용어로 말하면 대마(大馬)급에 해당한다고 할까. 그 대마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사석(捨石)을 아껴서는 안 된다. 바둑이 불리한 때는 더 더욱이.
까딱하다가는 강대국 외교 놀음에서 사석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 “때문에 북한은 미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방향전환을 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 타임스가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열흘도 못가 북한은 대화를 제의했다.
북한 문제에 중국은 그러면 얼마나 적극성을 보일까. 여전히 남는 의구심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것이 중국이 그동안 보여 온 태도였으니까.
“중국 측의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은 영구적인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그동안 중국의 판단이었다. 이와 함께 오만의 눈빛으로 대하던 게 중국이다. 미국이 경제회복세를 보이면서 그 오만의 눈빛이 사라졌다. 오히려 미국과의 협력을 갈구하는 분위기다.” 타임지의 보도다.
한 마디로 수세에 몰려있다. 경제,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국내적으로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만연한 부정부패 등 산적한 문제를 척결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미국과의 갈등은 적극 피해야 한다. 때문에 중국은 전례 없이 협력적 자세라는 것이 타임의 분석이다.
시진핑 체제 이래 주목받고 있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라는 외교용어도 그렇다. 중국이 기존대국인 미국과 대립 갈등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 경쟁을 통해 공동 이익을 확대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국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이다. 북한문제 논의에 있어서도 과거와 달리 진정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김정은 체제가 중국의 이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핵개발 저지는 물론 북한의 지도체제 붕괴위기에 대비한 비상대비책 등도 심도 있게 논의될 것이다.” 타임지의 보도다.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 저지 노력을 강화하는 대가로 미국은 김정은 체제 붕괴 후 주한미군을 3.8 이북 지역에 주둔시키지 않는 방안 등이 논의 될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은 종전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완충지대 논리에서 벗어나 진지한 논의를 할 태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서니랜즈에서의 미중정상회담은 북한문제 해결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김정은의 앞날에 있을 수 있는 반전은 어떤 것이 있을까. ‘친(親)중국 군부 봉기에 쫓겨 남한으로 망명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 제시된 시나리오의 하나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만물유전의 법칙이라 했던가. 그렇지 않아도 급변하고 있는 것이 동북아의 안보지형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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