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가 꼭 최고의 책은 아니라는 건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최악의 책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제퍼슨에 관한 거짓들’(The Jefferson Lies)라는 제목의 책이 그랬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데이빗 바튼이라는 극우 기독교 목사이다. 바튼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교분리원칙을 내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은 무시한 채 “미국은 애초부터 기독교 국가로 세워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신념을 퍼뜨리기 위해 ‘월빌더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바튼은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창조와 진화에 관한 긴 토론을 가졌으며, 그 자리에서 톰 페인은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식이다. 역사와 과학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즉각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활동할 당시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또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20세기였다.
바튼의 책은 이런 종류의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소수의 열성적 추종자들에 의해 엉터리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가득 찬 책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자 출판사는 결국 절판을 결정하게 된다.
엉터리 역사학자이자 목사인 바튼에 대해 ‘시대의 양심’인양 찬사를 보내온 유명인사들 가운데 하나가 ‘티파티의 여왕’ 미셸 바크만이다. 바크만은 지난 주 내년 연방하원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바크만은 거짓과 망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다. 영화 ‘라이언 킹’을 동성애 선전도구라고 비난한 것은 그녀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접어준다 해도 허리케인과 지진을 ‘신의 심판’이라고 부르는 저주의 언어에서는 섬뜩해진다.
바크만의 망언 퍼레이드는 “이산화탄소는 전혀 유해하지 않다” “최저임금을 없애면 일자리가 늘어나 완전고용에 이를 수 있다” “보수논객 글렌 백에게 국가채무 문제를 맡기면 그가 이를 해결해 낼 것”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어떤 발언들은 너무 무식해 그녀가 변호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런 상식이하의 망언들에도 불구하고 바크만은 4선에 성공하는 등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녀가 쏟아내는 거짓의 언어와 상식이하의 망언들에 열광하고 호응하는 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열성적이고 극성인 법이다. 그리고 이런 열성은 선거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사실이 아님이 너무 명백한데도 거짓의 언어와 망언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파편화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이를 반영하듯 미디어도 많아졌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극단적인 정치언어들까지 열광적으로 소비되는 창구와 공간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 하루 평균 15만명이 방문한다는 극우사이트 일베가 대표적이다.
거짓과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과 논객들이 추구하는 것은 ‘만인의 사랑’이 아니다. 그저 소수의 열성적인 추종자들만 계속 자극하고 동원할 수만 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지지와 열광은 돈이 되고 영향력이 된다.
극우매체인 폭스TV가 객관적인 보도기능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오피니언TV로 탈바꿈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보수종편들이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5.18 북한군 개입설 같은 거짓과 망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도 자신들에게 채널을 맞춰주는 소수시청자들을 계속 붙들어두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증거와 진실에 의해 신념의 잘못이 드러나도 이를 쉽사리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면 왜곡과 거짓까지도 서슴없이 받아들인다. 이것을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려 주는 매개수단이 뒷받침되면서 이제 거짓의 언어는 가장 확실하게 팔리는 상품이 되고 있다.
이를 열광적으로 소비해 주는 시장이 존재하는 한, 거짓의 언어는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고 망언은 날로 일상화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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