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야심차게 만든 구호이자 국정목표인 창조경제에 대한 혼란이 지속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답답했던지 지난달 인기 TV프로인 개그콘서트 PD를 청와대로 불러 창조경제를 설명토록 했다.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담당 PD는 창의적 콘텐츠, 패자부활 등의 개념을 들어가며 자신이 생각하는 개그콘서트의 인기와 장수비결을 들려줬다. 설명이 맘에 들었는지 대통령은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가 추구하는 것”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PD의 설명을 정말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담당 PD는 개그콘서트 성공의 핵심요인으로 아무런 제약이나 금기 없이 누구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제시하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꼽았다. 개그콘서트에서 “우리 PD는 못생겼다”는 등의 도발적이고 발칙한 대사들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 덕분이다.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을 높이 평가했지만 정작 개그콘서트의 성공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고 가는 스타일이 창의력을 자극하는 분위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통령이 1시간40분 동안 진행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무려 A4 용지 15장 분량의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7,000자 분량의 지시를 했다느니, 아니면 1만자에 달하는 말을 쏟아내며 국정과제를 세심히 챙겼다는 식의 보도들이 잇달아 나온다.
회의를 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항상 대통령은 말을 하고 참석자들은 고개를 파묻은 채 무언가 받아 적기에만 급급한 모습들이다. 대통령이 마치 학생들 책상먼지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같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기용한 인물들은 대체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비서형이라는 게 중평이다. 이처럼 경직된 분위기에서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스타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챙기고 지시하는 만기친람의 전형이다. 이런 스타일은 절대 권력이 왕 한 사람의 수중에 있었던 시절의 리더십으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낡고 비효율인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다.
1977년 작고한 영국의 뛰어난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는 바람직하지 못한 조직의 형태로 ‘오로지 가장 높은 곳에 달려 있는 큰 별만이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조직’을 꼽았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가 바로 이런 모습을 닮아 있다. 트리 위에 달린 큰 별인 대통령은 쉴 새 없이 시시콜콜한 지침들을 쏟아내고 관료들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이 같은 수직적 분위기 속에서 창의적인 국정운영, 창조적인 경제는 살아있는 구호가 되기 힘들다.
관료들이 좀 더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려면 대통령은 발언과 지시를 크게 줄여야 한다. 지시가 너무 많고 구체적이다 보면 아랫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지침을 어기지 않는 일에만 골몰하게 되는 법이다. 백지 위에 소신껏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대통령이 찍어 놓은 점들을 연필로 연결하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말라”던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이 말을 박대통령을 위한 조언으로 전하고 싶다. 회의에서 말은 줄이고 참석자들의 의견개진과 토론을 유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길 바란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라는 이미지는 이미 많이 퇴색했지만, 회의에서는 몇 가지 원칙만 제시하고 일은 관료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신뢰의 리더십을 보인다면 이런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을 진단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차용해 표현해 본다면 모든 조직은 같은 이유로 성공하고 각자의 이유들로 인해 실패한다. 박 대통령도 수긍했듯이 정부의 성공을 위한 조건이 개그콘서트의 성공 조건과 달라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만약 대통령이 PD가 돼 개그콘서트를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게 될까. 잠시나마 궁금해진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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