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두고 ‘언젠가는 터졌을 일’ 이라는 말들이 많다. ‘올 것이 왔다’는 것인데, 한국에서 말하는 ‘올 것’과 이곳에서 말하는 ‘올 것’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윤 씨의 개인적 자질을 문제 삼는다. 평소 그의 처신으로 볼 때 ‘사고’는 시간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곳 한인사회에서 ‘올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문화원 등 한국정부의 재외공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오는 고위 공직자들의 안하무인의 태도가 언젠가는 일을 낼 줄 알았다는 것이다. 통역이나 안내원을 아랫것 다루듯 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런 권위의식에 더해 천박한 성적욕망이 합쳐지면 결과는 뻔하다. 성희롱, 성추행이다. ‘윤창중 사건’은 이런 조합이 딱 맞아 떨어진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윤창중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한국이나 미주한인사회나 지난 한주 이 보다 큰 화젯거리는 없다. 만인이 입을 모아 그의 망동을 규탄하고, 그로 인한 나라 망신을 걱정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기름 웅덩이에 성냥불 던져진 듯 활활 타오르는 격한 반응들에서 좀 떨어져 바라보면 떠오르는 문제가 있다. 성냥불이 던져질 때만 반짝 하다가 곧바로 묻히곤 하는 ‘기름 웅덩이’, 성희롱 ? 차별에 대한 한국남성들의 무감각이다.
2011년 가을에는 강용석 의원의 ‘여대생 성희롱’ 발언이 ‘성냥불’이었다. 그가 연세대 토론팀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해야 하는 데…” 류의 낯 뜨거운 말을 한 것이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여론에 떠밀려 그에 대한 제명안까지 상정되었지만 국회는 이를 부결시켰다.
그의 성희롱 발언이 제명 받을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당시 여성단체들을 맥 빠지게 한 것은 표결 결과만은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런 말이 왜 문제가 되는 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의 무감각이 더 문제였다. 심지어 “이런 일로 제명하면 남아 있을 의원이 없다”는 ‘솔직한’ 의원도 있었다. 성희롱?추행에 대한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성희롱 ? 성추행은 남성중심 문화의 유산이다. 여성은 ‘안 사람’이고 집 밖으로만 나가면 남성들의 세계였던 과거 남성의 시각과 의식으로 말하고 행동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 무대로 여성들이 진출하면서 남성중심의 시각이 도전받고 있는데, 중년 이상의 한국남성들 중에는 아직도 옛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창준 사건’ 정도는 아니더라도 “너나 잘 하세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들이 꽤 있다.
성희롱 ? 추행은 힘의 문제라는 점을 남성들이 알았으면 한다. 예뻐서 좀 쓰다듬어 주고, 재미있으라고 야한 농담을 하는 것은 서로가 대등한 관계일 때에 한한다. 상대방이 약자일 때, 그래서 ‘노우’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이런 행동을 하면 그것이 성희롱이고 성추행이다.
성추행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렇듯이 이번에도 피해 여성에 대한 손가락질이 없지 않았다. 그 여대생이 애초에 왜 거길 갔느냐, 같이 술 마시지 않았으면, 호텔방에 안 들어갔으면 될 일 아니냐는 비판들이 있다. 남가주의 한 공관에서 현지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여성은 이에 대해 ‘전혀 실정을 모르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오는 고위 공직자들은 한마디로 ‘나는 권력자다. 나를 모셔라’라는 태도가 대단하고 그 앞에서 일대 일의 대등한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역이든 안내원이든 맡은 일만 하면 되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한 밤중에라도 부르면 가야 하고 ‘여기 앉아 보라’ 하면 절대 ‘노우’를 할 수 없어요. 저런 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 싶어요.”한국 공직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서적으로 비슷한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직장에서, 단체에서 유사한 문제들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대학 동창회 임원으로 일하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언제부터인가 동창회 모임에 발을 끊었다. 저녁식사하며 회의를 마치고 나면 으레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데 그때마다 행동이 흐트러지는 남자 선배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 후배들은 정색을 하고 일어날 수도 없고 그냥 참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어서 여간 불쾌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윤창준 사건’은 근본적으로 그의 자질의 문제이지만 성희롱? 추행에 대한 사회적 무감각도 한몫을 했다. 이번 사건이 그 무감각을 몰아내는 계기가 된다면 그도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본의 아니게 “너나 잘 하세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자존감을 배려하는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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