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식당이나 레스토랑이란 말보다 ‘밥집’이라 하면 고봉밥에 맛깔스런 반찬을 양껏 먹고 가격도 엄청 싸서 배 두들기며 나오는 문턱 없는 곳이 상상된다. 작가 황석영은 작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 정권교체가 안되면 프로방스에 가서 가정식 백반집이나 하며 늙어가겠다”는 말을 했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지기를 절실하게 바란다는 뜻으로 반 농담 삼아 한 얘기라고 한다.
프로방스 지방은 햇빛 좋고, 음식 맛있고, 다른 사람 신경쓸 필요 없어서 좋았다며 외국인이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기 딱 좋은 곳 같더라고도 했다.사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지역인 프로방스는 고흐, 피카소, 르노아르, 마티스, 샤갈 등이 살며 창작열을 불태우던 곳으로 오랜 역사의 자취와 예술의 향기, 아름다운 자연 속에 소박한 인심이 바쁜 일상에 지친 인생들이 푹 쉬어갈 수 있는 여유로운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곳에 황석영의 밥집이 생겨 그가 밥을 나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 관광객들이 몰려 꽤나 유명한 밥집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국땅에서 배가 고픈 방랑자들에게 한 끼 밥을 지어주겠다는 발상은 굳이 끼니가 아닌 정신적인 피난처로 여겨졌었다.그런데 황석영이 고대하던 정권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새 정부가 집권하면서 그가 작사한 온 국민의 노래 ‘임을 향한 행진곡’을 정부가 폐기하고 다시 새로운 노래를 정하겠다고 한다.
5.18민주화 운동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고 별도의 공식 기념노래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언에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있다. 5.18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1982년에 만들어져 유족들의 추모제에서 불리다가 2003년부터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제창됐다.
이 노래는 백기완 선생의 시를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해 다듬은 노래이다.
그 며칠 후에는 황석영이 작가생활 50년을 맞아 한국일보에 연재한 후 출간한 소설 ‘여울물 소리’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도서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출판사가 독자로 위장해 특정도서를 대량 구입해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도서 사재기는 명백한 범죄로 1990년대부터 2~3년을 주기로 계속되어온 고질병이다. 이번에 이름이 오른 황석영은 작가로서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며 절판을 선언했다.
하도 서로 짜고하는 고스톱판이 많은 한국에서 이것조차 함정수사나 표적수사가 아닌 가하는 의혹이 들 정도다. ‘밥집’ 괘씸죄가 아닌, 우연히 시기가 겹쳐 황석영 수난시대가 왔을 수도 있다.
원래 황석영은 자퇴, 가출, 막노동, 베트남전, 광주민주화 항쟁, 방북, 해외체류, 수감생활, 유라시아 프로젝트 등 엎어지고 깨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70평생을 보내었다. 그의 ‘삼포가는 길’, ‘객지’, ‘장길산’ 등의 초기소설은 세상의 모순을 짚어내고 밑바닥 인생을 그려내 없는 자의 슬픔에 동참했다.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한 후 1993년 귀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98년 사면석방된 후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손님’, ‘심청’ 등을 출간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므로 실정법을 위반한 그가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독일, 뉴욕으로 떠돌며 살 때는 많은 이들의 눈총을 샀다. 황석영의 글은 나날이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며 매년 노벨문학상 작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참인데 최근 한국에서 그의 처지는 보기 딱하다.
‘작가는 어디에서 살더라도 모국어로 글을 쓰면 그만큼 국경선이 넓어진 것’이라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은 말했다. 고흐의 그림처럼,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핀 들판에 노을이 깃들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아를르 시골마을에서 밥집을 하는 황석영은 어울려 보인다.
더 이상 세상사에 꼬여들어 구설수에 휘말리지 말고 걸출한 입담에 맘씨 좋은 아저씨로 낮에는 밥을 팔아 배고픈 자들을 만족시키고 밤에는 모든 것 내려놓은 글을 써 허기진 영혼을 위로하기 바란다. 아마 몇 년 후에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답게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 나올 것이다. 프로방스에 황석영의 ‘밥집’이 생긴다면 그곳으로 밥 한끼 먹으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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