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는 짧은 말로 대통령의 리더십을 정리한 바 있다. 정작 그 자신은 사람을 잘못 쓰는 바람에 많은 곤욕을 치러야 했지만 그의 지론만은 뛰어난 식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사람 쓰는 일 외에는 별로 없다. 무슨 생산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 국민들을 웃고 울리는 엔터테이너도 아니다. 단지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들은 잘 골라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이것이 국정운영이고 성패는 어떤 인물들을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가 되기도 하고 ‘망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태는 잘못된 인사, 오기 인사가 초래한 대참사이다. 박 대통령의 방미로 보수가 그토록 따지기 좋아하는 국격이 한 단계 높아지는가 싶더니 윤창중 추태로 도리어 곤두박질쳤다. 방미 외교에 정성을 쏟았던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사태에 열불이 날 것이다. 그렇다고 마땅히 하소연할 만한 데도 없어 보인다. 자신의 귀머거리 인사가 자초한 참사이니 말이다.
대통령이 되는 데는 국민들에게 자신을 세일즈하고 설득하는 입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좋은 대통령이 되는 데는 눈과 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 그리고 주변의 고언에 기꺼이 열어 놓는 귀를 갖지 못한다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은 피할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눈과 귀는 어두워지게 돼 있다. 스티븐 카우프만이 대기업의 총수로 취임할 때 그의 친구는 “앞으로 자네는 더 이상 진실을 구경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충고를 해줬다. 하물며 대통령이라는 권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까닭에 항상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문을 갖고 주변에 쓴 소리를 청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인사청문회 논란과 잇단 낙마에서 드러났듯 박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오히려 인사청문회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라는 시스템에 깊은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그나마 자신이 잘못 고른 인사들을 어느 정도 걸러내 준 것이 청문회이니 말이다.
박 대통령이 문제의 윤창중을 대변인으로 임명할 때 부적격 인물이라는 게 중평이었고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그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만약 청와대 대변인이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자리였다면 이번과 같은 참사는 애시당초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판단할 때 자신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주위의 평판을 살펴본다면 실수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가 국정의 한축을 담당할 만한 동량이 되는지 한 번쯤 의구심을 품어봐야 한다. 도덕성과 능력이 형편없더라도 한 사람의 마음에 들게 처신하는 것은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 기업들이 사람 채용하는데도 평판을 중요시한다. 평판조회라는 것을 해 주는 전문업체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조차 평판조회를 하는 세상이다.
공자는 인물을 등용할 때 9가지를 살펴보라고 했다. ▲먼 곳에 심부름 시켜 충성을 보고 ▲가까이 두고 공경을 보며 ▲번거로운 일을 시켜 재능을 보고 ▲뜻밖의 질문을 던져 지혜를 보며 ▲급한 약속을 하여 신용을 보고 ▲재물을 맡겨 어짐을 보며 ▲위급한 일을 알리어 절개를 보고 ▲술에 취하게 하여 절도를 보며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이성에 대한 태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매뉴얼대로 했더라면 문제의 인물 윤창중은 당연히 걸러졌겠지만 시대가 달라진 지금 공자시대의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인사청문회 같은 시스템을 존중하고 평판에 세심히 귀를 기울인다면 인사 재난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출범 2개월 반 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평은 “이미지 정치에는 강한데 인사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미지를 공들여 쌓아도 잘못된 인사 하나면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린다. 임기 초에 이런 불미스런 일이 터져 곤혹스럽고 화가 나겠지만 뼈저린 교훈을 얻는다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사람 쓰는 일에 좀 더 지혜롭고 겸손해져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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