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아주 특이한 해다. 역사의 한 매듭을 결정짓는 세계적 사건들이 겹쳐 일어난 해가 1991년이다.
소련제국이 붕괴됐다. 그 때가 1991년 12월31일이다. 같은 해 같은 달 유럽 국가의 정상들은 네덜란드에 모였다. 이 모임에서 제시 된 것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다. 이 조약을 통해 유럽공동체(EC)를 유럽연합(EU)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1991년은 일본의 경제기적이 종언을 고한 해로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란 전후 최장기 경제 불황기를 맞는다. 1991년은 동시에 천안문사태 쇼크를 어느 정도 극복한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도입과 함께 본격적인 경제성장기에 진입한 해로 기록된다.
이 1991년을 기점으로 세계는 대 전환기를 맞는다. 냉전이후의 세계(Post-Cold War World)로의 전환이다. 이 냉전이후의 세계의 첫 10년과 그 다음 10년은 그러나 상당히 다른 흐름을 보인다. 1991년에서 2001년 9.11사태까지가 그 한 흐름이다. 9.11이후 현재까지 또 다른 흐름이다.
미국 독주의 시대가 끝났다. 세계 질서는 미국, 중국, 그리고 EU의 3대 파워를 중심으로 새로 형성됐다. 이것이 9.11 사태 이후의 시대에 대한 대체적인 진단이다. 냉전이후 세계 세 번째 10년 기에 접어든 현재는 그러면 무슨 시대로 부를 수 있을까.
한 시대는 그 시대가 끝난 후에나 그 시대사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이름이 붙여진다. 이런 점에서 마땅한 이름이 아직 찾아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G2 시대가 도래 했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월스트리트가 붕괴됐다. 2008년의 일이다. 그 해에 화려하게 펼쳐진 것이 베이징 올림픽이다.
그 미국과 중국이 대조되면서 대세인 양 받아들여진 것이 ‘중국 세기(世紀)론’이다.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로, 본격적인 중국의 부상을 앞두고 세계는 G2,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의 시대를 맞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회의의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소수의 시각으로 치부됐었다. 2010년 중국의 GDP가 일본을 앞지르면서 특히.
‘과연 그럴까’-. 소수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요즘 들어 G2 시대란 말은 빛을 잃고 있다. 동시에 ‘21세기는 중국세기’란 주장도 허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높아가고 있다.
중국의 GDP 발표는 어쩌면 통계의 조작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스로의 치적을 과대포장 하려든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통계적 픽션이라는 거다. 혐중(嫌中)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도 나오는 지적이다.
리커창 총리도 근본적으로 중국정부의 통계를 믿지 않는 인물이다. 위키리크 전문에 따르면 때문에 리커창은 중국의 전력 소비 데이터를 근거로 별도의 경제 계측을 해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전력소비통계 마저 당 간부 지시에 따라 조작되어왔다는 것.
통계조작은 그러나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GDP 수치 불리기에 급급한 단선적인 성장추구정책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한 문명국가로서 생존을 위협 받고 있다.” 민신 페이의 말이다. 중국의 강물은 2/3 이상이 심하게 오염돼 있다. 경작지의 10%가 중금속에 오염돼 있다. 또한 불평등, 부패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신뢰는 증발했고 정부불신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사회의 결속력도 계속 허물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못해 10억 빈곤층은 사실상 방기된 상태다. 금융기관은 투명성이 없고 법치는 부재 상태다. 게다가 고령화의 그림자는 점차 짙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내공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중국경제란 지적이다.
“중국의 경제기적은 끝났다.” 중국경제의 성장률은 앞으로 3.7%정도가 고작이란 전망과 함께 여기저기서 나오는 단언이다. 20여 년 전 일본이 맞았던 상황을 중국이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조지 프리드먼도 같은 진단을 내리면서 이런 지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과 달리 중국은 10억이라는 방대한 빈곤층을 떠 앉고 있다는 사실이다.”요약하면 이렇다. 냉전이후 세계의 3대 파워- 미국, EU, 중국-는 저마다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중국이다. 경제는 다이내믹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런데 그 활로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해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그 같은 경제를 건설한 체제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내구성을 보일까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이 끝나기 무섭게 중국방문 보도가 나오고 있다. 다음 달 중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G2 시대를 맞아 한국주도의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 위해 한중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의 수위가 높아지고 일본은 우경화 되는 등 어려운 대외환경에 직면해 있다. 그런 면에서 발 빠른 외교노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는 것이 아닐까.
변화된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보다 깊고 정밀한 수읽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G2 시대’란 아무래도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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