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분 나쁜 일 중의 하나는 차별을 당하는 일이다.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다. 차별을 당하면 분노가 일어나고 억울한 심정이 되어 개혁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차별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종차별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1940-50년대만 해도 백인과 흑인은 한 화장실을 쓰지 못했다.
링컨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없애려 흑인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남부지역은 여전히 흑인들을 차별의 대상으로 삼아 아예 흑인은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흑인인 지금도 인종차별은 보이지 않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아직도 백인들의 보는 눈은 그리 곱지가 않다.
그런데 백인도 아닌 한인이 한인을 차별한 일이 얼마 전 일어났다. 지난 5일 박대통령의 동포간담회 때에 발생한 일이다. 동포언론기자들은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발에 족쇄를 달아야만 했다. 행사장 맨 뒤쪽에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는 사각 공간. 그곳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공갈 아닌 협박을 들어야 했고 경호원들은 꼼짝도 못하게 했다.
한 기자가 그 곳을 벗어나려 하자 경호원이 “한 번만 더 이 공간을 벗어나려 하면 곧 바로 내쫒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한국정부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다고 했단다. 한국정부면 도대체 어디 누구가 이런 지시를 경호원에게 내렸나. 기자들의 질문에 총영사관측은 청와대의 지시였다고 발뺌만 했다니 취재 요청이나 하지 말았어야지.
대통령의 행사를 취재하려면 총영사관에서 미리 언론사에 취재요청을 한다. 언론사는 취재기자를 선택해 연락한다. 총영사관에선 그 기자의 신원조회를 철저히 조사해 하자가 없으면 행사장에 초대한다. 검색대에서 조사를 받은 후 비표를 받고 행사장에 들어간다. 비표는 의심이 없는 자만 받는 거다. 그러니 보안문제엔 하자가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 행사장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하물며 일반인마저 사진을 찍는데 동포기자들은 멀뚱히 행사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안에 문제없이 행사장에 들어간 기자들을 이렇게 차별을 하다니 도대체 한국정부가 정신이 있나 없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동포기자들을 취재하라 불러놓고 이 무슨 망신살인가.
이건 인종차별에 못지않은 차별이다. 한국의 파견 기자들과 동포기자들과 다른 게 무엇이 있나.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들인데. 한국에서 발행되고 방영되는 신문과 방송은 진짜고 동포들을 위해 현지에서 발행되고 방영되는 신문과 방송은 모두 가짜인가. 어떻게 이런 차별이 뜻 깊은 대통령행사장에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통탄할 일이다.
만에 하나 한국정부의 이런 태도가 박근혜정부의 정책 중 하나라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어디에 있나. 한국에 사는 사람만 한국 국민이고 해외에 사는 한인은 어디 중국인이나 유대인이라도 되는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IMF, 수재 등)마다 수많은 해외 동포들이 얼마나 많이 힘을 모아 조국을 위해 돈을 보내고 정성을 보태었든가.
열악한 이민 환경에서도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하나로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십시일반 도와왔던 우리 동포들. 동포들에게 조국의 어려움을 널리 알려 적극 동참을 유도했던 동포언론들. 그런 동포언론사의 기자들을 한국정부는 차별해도 너무 차별했다. 무시할 것이 따로 있지 왜 동포언론과 동포 기자들을 벌레 보듯 그렇게 무시하고 차별하나.
어찌됐건 박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의 기자들과 경호원도 귀국했다. 만에 하나 한국의 기자들이 동포기자들이 ‘걸리적’거리니 통제해 달라하여 일어난 차별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한민족의 정신도 혼도 없기에 그렇다. 그리고 청와대도 대통령의 이미지에 먹칠하지 않게 경호하기를 바란다.
애매모호한 것은 총영사관측의 태도다. 동포기자들이 홀대받고 차별되도록 왜 손 하나 못쓰나. 발뺌만 해대는 총영사관. 동포를 위한 총영사관이 아니라면 미국엔 왜 있나. 차라리 떠나라. 이번에 일어난 동포기자들의 차별은 백인 화장실에 흑인이라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인종차별보다 더 심한, 같은 한인끼리의 차별인 것 같아 씁쓸한 맛 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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