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이란 세월은 동양의 세계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60년의 세월은 한 갑자(甲子)를 완성하고, 또 다른 세계와 새로운 영역으로 국면을 전환한다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한 갑자의 세월, 그러니까 1953년에서 2013년의 세월은 한국인에게 있어 하나의 기적이었다. 현대사의 미스터리였다. 작은 충돌은 있었지만 전쟁은 없었다. 그렇다고 평화가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60년째 냉전적 대결상태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해온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이런 예를 찾기 힘들다. 전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린 중동지역에서 수차례 전쟁이 발발했지만 모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한반도에서만 대치상황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같이 기묘한 스테이터스 쿠오를 가능케 했나. ‘한반도에 관한 한 분단 상태가 더 바람직하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일치된 입장이다. 거기다가 분단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의 이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스테이터스 쿠오가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그 수훈갑의 인물은 아무래도 김정일이다.
“1년 반 전에 죽은 김정일은 한마디로 형편없는 지도자다. 아니 재난을 몰고 온 극히 불길한 지도자였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니콜러스 에버스타트의 평가다.
현대의 산업국가로서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는 끔찍한 기록을 세웠다. 스탈린도, 모택동도 휘둘러보지 못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북한이란 국가를 제도도, 헌법도, 인민노동당 헌장도 무시되는 마피아집단 같은 체제로 전락시켰다.
그 김정일은 후계구도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2008년 스트로크를 맞은 후에야 20대의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함으로써 북한의 후계 권력세습에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그 심각한 후유증으로 북한권력구도는 여전히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잇단 핵위협도 다름이 아니라는 거다. 체제가 안으로부터 붕괴위기를 맞고 있다. 그 내부의 불안 요소를 감추려는 비명소리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수령이라는 ‘왕좌’가 위협을 받고 있다. 북한이란 국가 자체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 그 호도책으로 김정은은 외부세계에 모험적이고 충동적인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수령절대주의란 우상숭배체제가 지닌 속성상 이는 필연의 수순이다. 내부 모순이 쌓여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조그만 외부 충격도 감내하지 못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초코파이가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가디언지의 보도가 그 한 예다.
한류(韓流)의 대한민국이 지닌 소프트파워의 극히 작은 단면에 불과한 초코파이의 위력에 벌벌 떠는 체제가 김정일이 남겨 놓은 북한체제인 것이다. 여기서 점쳐지는 것이 북한체제의 붕괴다. 60년 간 지속되어온 분단 상태, 그 기묘한 스테이터스 쿠오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체제유지는 지속되어야 한다. 북한의 절대적 명제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출구가 없다. 개혁개방의 끝은 결국 수령절대주의 체제몰락이다. 그러니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갈 수도 없다.
결국 빼든 것이 선군(先軍)이고, 핵카드다. 그러나 너무 나갔다. 그 무모한 도발에 한반도 상황이 급박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정책에 따라 동북아의 안보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 때마침 북한의 도발은 미군의 전진배치에 명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북한 체제의 내부모순이 쌓여간다. 그 자체로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는 소리 없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거기에 강력한 외풍이 불어오고 있다. 한반도 중심의 강대국 파워게임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한반도 현상유지 포기를 설득하라’-. 워싱턴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한반도 통일 과 비핵화를 주한미군철수와 맞바꾸는 전략을 중국이 선택하게 하라는 주문이다. 탁상공론이 아니다. 북한의 도발에 염증이 났다. 북한은 점차 전략적 자산이 아닌 짐이 되고 있다. 그 정황에서 중국의 신 지도부가 취할 수 있는 한반도 정책의 가능한 옵션이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북한체제 붕괴론은 더 구체화 되고 있다. 마치 카운트다운이 시작 된 듯이. “오는 2020년께 북한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닐 퍼거슨의 단언이다. “한반도 통일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올 수 있다.” 후버 연구소의 폴 그리고리의 주장이다.
이 모든 주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지정학이 달라지면서 중국은 기존의 북한 카드를 버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린다. 6.25 정전협정 60주년, 그리고 민족 분단 70년을 두 해 앞둔 시점에서 열리는 회담이다. 이 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의 희년이 곧 다가오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무리일까.
한 갑자(甲子)를 완성하는 60년이란 세월은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것이 동양의 지혜다. 유대기독교전통의 세계에서 70년이란 세월에서 찾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다. 바빌론에 포로가 됐던 유대인들이 70년 만에 해방됐듯이. 그래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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