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살면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타인과의 소통이다.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말이나 글로 이루어진다. 글을 통한 소통, 즉 편지 같은 것은 시간을 내어 자신이 잘 다듬어 보낼 수 있어 실수가 적다. 그러나 말은 그렇지가 못하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있는 그대로 쏟아 낼 수 있는 것이 말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말한 사람이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남을 칭찬해 주거나 용기를 주는 말은 그런대로 별 하자가 없다. 아니, 그런 말은 서로간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되거나 삶에 유익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깎아 내리는, 혹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욕설 같은 말은 큰 화를 자초한다.
최근 뉴욕시경은 지난해(2012년) 살인사건 통계와 사건의 동기를 발표한 적이 있다. 총 419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 중 사소한 말다툼과 언쟁이 동기가 되어 저질러진 살인사건이 전체의 42%가 되는 176건이다. 가장 많다. 다음이 가정폭력(18%), 마약거래(11%), 조직폭력(9%), 강도피해(6%) 등의 순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순위 같지만 사실이다. 조직폭력으로 죽은 사람이 38명, 강도 살해 사건으로 죽은 사람이 25명으로 3위와 4위이다. 단순 동기인 말다툼과 언쟁이 원인되어 살해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통계이다. 사소한 말다툼이 살인까지 가는 이런 상황. ‘욱’하는 성질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다 있나 보다.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 간의 오고가는 말도 가려해야 한다. 부부의 사소한 말다툼이 살인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혼까지 가는 경우는 흔하다. 조금 화 난 일이 있다고 아무렇게나 내 뱉는 말은 서로간의 자존심을 건드려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 말이 화근이 되어 소통불능이 되면 ‘성격차이’란 허무맹랑한 이유를 들어 서로 갈라서게 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에서도 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들에게 용돈을 많이 준다 해도 “야! 이 자식아, 혹은 야! 이년아”하며 자녀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면 부모로부터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한 이런 자녀들은 불을 보듯 번한 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일찍이 청소년기에 탈선해 가출하거나 범죄의 소굴로 빠질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 ‘수중허용(守中虛用)’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多言數窮不如守中(다언수궁불여수중)’. 뜻은 “말을 많이 하면 자주 막히니 중을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차라리 침묵하거나 말을 하지 말란 의미다. 다툼이 일어나거나 언쟁이 붙었을 상황에선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로 목청이 높아진다. 그러다 폭력이 오간다.
폭력은 폭력을 낳아 이성을 잃게 되면 뒤집힌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무기가 될 수 있다. 닥치는 대로 잡아 쏘거나 휘두르다보면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이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이런 극한 상황까지 가지 않는 지혜로운 처신은 침묵하거나 져 주는 방법이다. 말싸움에서 졌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럴 때의 자존심! 개천에다 버려야 한다.
또 도덕경 ‘배천부쟁(配天不爭)’편에는 ‘선전자불노(善戰者不怒)’란 말이 나온다. “잘 싸우는 자, 즉 싸움에 이기는 자는 성을 내거나 다투지 않는다”란 뜻이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이기려면 조용조용히 얘기하는 사람이 이긴다. 성을 먼저 내는 사람이 반드시 지게 돼 있다. 하늘이 말해 주는 법칙이다. 부부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성서 마태복음(5:39-44)엔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며~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란 성구가 있다. 제자들을 가르친 예수의 이 말은 소통과 화해를 열어가는 가장 지름길이 아닐까.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면 “이런 바보가 있나!”하며 바로 돌아설 것이기에 그렇다.
사소한 말다툼과 언쟁이 우주보다도 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사건의 42%로 가장 큰 원인임을 보았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해(18%)도 별 것 없는 말다툼으로 시작할 것이 확실하여 둘을 합하면 60%가 된다. 상당하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주듯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금만 참고 양보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바로 소통이 될 것을. 어리석은 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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