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 (교육가)
이상화, 월드컵 품고 사상 첫 ‘그랜드 슬램’, 빙속 여제인 이상화가 한국 빙상 최초로 세계 4대 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다. 장한 일이다. 손뼉을 치다가 동시에 번개처럼 하나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어떻게 스케이팅을 시작하였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은석학교에 다닐 때 한인현 교장선생님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씩 찾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몇몇 학생들이 스케이팅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은석학교는 박은혜 선생님이 세운 학교이고, 학교장은 한 때 필자와 동료 교사였고, 두 분 다 이미 고인이 되셨다.
하지만, 두 분이 다 아직도 분명히 살아계시다. 이상화의 그룹이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이야기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첫째는 ‘하고 싶은 일’이 주는 매력이다. 둘째는 ‘내가 찾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성장하면서 이 과실을 성의껏 키웠다.
“엄마도 내 생각이 재미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에 “어떤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왜?” “선생님은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참 재미있는 생각이네! 하고 웃으셔.”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해?” “엄마, 난 막 신나. 아마 난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기계인가 봐.” 엄마는 꾀돌이 얼굴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고.
한국에서 책이 왔다. 저자 이름을 보니까, 1964년에 한국을 떠날 때 맡았던 학생이었다. 그녀가 어엿한 작가가 되어 저서를 보내준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책의 중간쯤에 빨간 쪽지가 붙어있어서 거기부터 읽게 되었다. ‘곶자왈’의 글에 따르면 동화구연대회에 나갔을 때 너무 긴장해서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돌아와 울먹이는 내게 등을 다독거려 주시면서 “잘 했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신 분...이라는 구절이 있다. 사실은 읽으면서 그때 어떤 말을 하였는지 몰라서 조마조마하였다. 필자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니 정말 고맙고 다행이다.
또 이런 e-메일을 받았다. 선생님은 제가 여태까지 늘 잊지 못하는 두 가지 귀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 국어 성적이 나빠서 어머니한테 꾸중을 듣고 “저는 왜 잘 읽고, 쓰지 못하나요?”라는 질문을 하였을 때 “우리말이니까 누구나 잘하게 된단다. 걱정하지 말고 많은 책을 읽고, 네가 잘하는 것부터 해보렴.”이라고 하신 말씀은 제가 사는 동안 제일 큰 인생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또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우주비행사가 될 거다”라고 장래 희망을 말했을 때, 그러려면 여러 가지를 골고루 알아야 하니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습니다.(후략) 그는 현재 나로 우주센터에 근무하는 총괄 수석 설계사이다. 어린 시절의 희망을 달성한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꾸준한 노력으로 기어이 꿈을 이루었다. 거기에 필자가 준 도움이 컸다는 내용이니 놀랍다.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의 계속이다. 여기에 예로 든 것처럼 한마디가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듣는 사람의 용기를 좌절시키거나, 실망시키거나, 다시 한 번 도전하려는 의욕을 감소시키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사랑이 부족한 경우이다. 이런 말들은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되니 얼마나 죄스러운 결과인가.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이 속담의 뜻을 다시 생각한다. 말을 잘하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여기서 ‘말을 잘 한다’는 뜻은 성의 있고, 말을 주고 받는 양쪽 편을 고려한 현명한 말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삶을 계속한다. 때로는 긴 말이 아니고, 단지 한마디의 말이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거의 반세기가 넘은 먼 옛날 학생이 용기를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의외의 결과에 감사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단지 한마디 말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와 같다. 특히 어린 자녀에게 주는 말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는 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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