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권력과 그것을 쥔 세력의 잘못된 의도가 결합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전쟁은 대부분 성숙치 못한 사고를 지닌 지도자들이 인지적인 함정에 빠질 때 발생한다. 이라크 전쟁이 바로 그랬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으며 이를 무너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부시가 후세인 정권 전복에 안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라크의 석유 장악이 가장 큰 것이었지만 개인적인 동기도 작용했다. 아버지 부시 때 걸프전을 벌이고도 후세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데 따른 미진함이 남아 있었던 데다, 아버지의 위세에 눌려 온 못난 장남의 “뭔가 보여 주겠다”는 과시심리도 작용했다.
부시 취임 직후 터진 9.11테러는 이라크 공격의 빌미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단 어떤 목표에 눈이 멀게 되면 그때부터 합리적인 판단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모든 정보들은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그런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사실로 둔갑하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 전달되면서 후세인 정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증오는 날로 치솟았다.
선동 캠페인의 전형이었다. 기정사실로 국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정보는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과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들은 나중에 허위로 드러났으며 부시를 비롯한 전쟁주도 세력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다.
국민 기만을 통해 일으킨 전쟁의 결과는 참담했다. 이라크 전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주도한 인사들은 퇴임 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잘 살고 있다. 국방부 부장관으로 전쟁에 앞장섰으며 퇴임 후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했다가 여성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사임했던 폴 월포비츠 같은 사람은 반성은커녕 여전히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했다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들과 군인들의 목숨을 무수히 앗아간 잘못된 전쟁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일부 법조인들은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법조인은 연방검사를 지낸 빈센트 볼리오시다.
볼리오시는 부시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가 부시에 대해 공소시효가 없는 살인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수많은 증거들이 보여주듯 부시는 사기를 통해 미국을 전쟁으로 몰고 갔으며 그 결과 제3자(이라크 군대)에 의한 미군살인이 이뤄지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전쟁 주도세력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 덕으로 아랍의 봄이 찾아왔으며 후세인 제거로 중동지역 불안요인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부시는 역사가 자신을 재평가해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와 달리 역사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냉담한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동기 자체가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만과 사기, 그리고 왜곡된 논리를 통해 불순한 목적을 성취하려는 정치적 행위는 아무리 합리화하고 포장해도 여전히 기만이고 사기일 뿐이다. 결과와 관계없이 말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은 국민을 상대로 금강산댐이라는 사기극을 벌였다. 북한이 서울의 3분의1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댐을 금강산에 건설한다면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적대감을 한껏 높여 놓은 후 국민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거둬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이 주장은 정권의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과장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한참 후 홍수가 발생하고 댐이 어느 정도 치수효과를 안겨주자 “댐 건설을 잘한 것 아닌가”라며 대국민 사기를 옹호하는 주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이 좀 더 확장되면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이 근대화 되지 않았는가”라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궤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불순한 목적의 정치적 기만으로 수많은 국민들을 우롱하고 희생시킨 사람들에게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적 행위’였다는 이유로 당장의 사법적 처벌이 힘들다면 역사의 단죄를 통해서라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만이 똑같은 어리석음의 반복을 그나마 막는 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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