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한 평생, 70에서 80 혹은 90을 살면서 한결같이 깨끗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물론 태어날 때야 흠 하나 없이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백지처럼 태어난다. 그러나 살다보면 어느새 얼룩이 지고 때가 끼어 어디 하나 깨끗한 곳이 없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자신은 좀 올 바르게 살아보려 하나 세상이, 환경이 이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과 생각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게 세상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타협을 아니 할 수 없고 적당히 살아야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관료나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경우엔 더더욱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평생을 청백리처럼 산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5일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퇴임한 김능환(62) 전 대법관. 진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법관이 됐다. 2006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2011년 2월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되어 제19대 총선(국회의원선거)과 제18대 대통령선거를 무난히 치러내고 조용히 물러났다.
지금 그는 부인이 하는 조그만 편의점을 돕고 있다. 캐시어도 보고 잡일도 한다. 군것질거리를 사러 온 꼬마에게 사탕을 공짜로 주고 막걸리를 사러 온 노인에게는 돈을 깎아주기도 한다. 아직 물건 정리하
는 법은 못 배웠다는데 그것마저 하면 부인이 너무 심심할까봐 그렇단다. 33년간 청백리로 살다 퇴직한 그의 거취가 심금을 울려준다.
청백리(淸白吏)란 청렴결백에서 나온 말로 의미는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탐욕이 없는 관리’를 뜻한다. 조선조 시대엔 정2품 이상의 고관과 사헌부(검찰청)나 사간원(정부부처)의 우두머리들이 추천하여 뽑던 청렴한 벼슬아치란 뜻도 있다. 중국 한나라의 염리제도를 본 따 만든 것이며 한나라에선 깨끗한 관리들을 염리(廉吏)라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엔 137명의 청백리가 나온다. 그중 대사헌(검찰총장)을 지내고 세종대왕시 재상(좌의정)까지 지낸 맹사성(1360-1438)이 있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했으며 식량은 늘 녹미(조정에서 봉급으로 주는 쌀)를 먹었다. 공무가 아닌 때에는 말을 타지 않고 항상 걸어 다니거나 소를 타고 다녀 사람들은 그가 재상인줄도 몰랐다 한다.
또 한 사람의 청백리가 나온다. 조사수(1502-1558)다. 대사헌과 좌참찬(재상을 보좌하는 자리)까지 지냈다. 당시 임금이었던 중종은 궁전 안뜰에 청문(淸門), 예문(例門), 탁문(濁門)의 세 개의 문을 만들어 만조백관들을 드나들게 했다. 청문은 맑고 깨끗한 사람이, 예문은 보통사람이, 탁문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었다.
만조백관 모두가 보통문을 통과하는데 조사수만이 당당히 청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가 청문을 통과했는데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청백리임을 증명했다. 그는 영의정 심연원의 집이 너무 크다고 하여 질책했는데도 심연원은 그를 오히려 이조판서 자리에 천거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자의든 타의든 깨끗하지 못했다 치자. 그러나, 지난 것은 과거다. 앞으로 남은 생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살아야 남은 인생을 청렴결백하게 깨끗이 살아갈 수 있을까.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하늘이 내려다보아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삶은 어떤 생이어야 하나. 청백하게 살아야 함은 관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덕목이다. 고위 성직자로서 고고하게 살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렴결백하게 성직의 길을 걸어와 모든 추기경들에게 덕이 되고 모범이 되어 선출된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
전관예우와 권력과 돈이 판치는 한국에서 청백리의 삶을 보여준 김능환 전 대법관. 평생 가난한 법관으로 살았지만 그는 영원한 청백리로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소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이 재상인줄도 몰랐다던 조선의 맹사성. 청문(淸門)을 당당하게 지나다녔던 조사수 등등. 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고 싶은 심정, 나만의 것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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