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자녀 키우셨어요? 구석기시대 부모로군요.”
대학 진학 컨설팅이 화제에 오르자 젊은 엄마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90년대에도 진학 컨설팅이 없지 않았지만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에 속했다. 대개는 학교 공부 충실히 하고 여름방학 동안 SAT 학원 다니는 것으로 입시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우리 신문 사회면에 진학 컨설팅 사기 기사가 보도되었다. 대학 학비보조 신청을 대행해주는 컨설턴트가 계약금 1,200달러만 챙긴 후 잠적해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그 기사에 대한 반응으로 완전히 세대가 갈라졌다. 대학 진학생 자녀를 둔 주부들은 “조심해야 겠구나”하는 반응을 보인 반면, 그 윗세대는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연방 학비보조 무료신청(FAFSA)을 하는 데 왜 그런 큰돈을 들이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2000년대를 통과하며 한인사회의 대학진학 풍토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90년대만 해도 미국의 한인부모들이 ‘이민 오길 잘 했다’ 여긴 것은 한국의 입시지옥 소식을 들을 때였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의 절반만 해도 UCLA 정도는 걸어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요즘 학부모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올 가을 딸이 여자사립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한 주부의 말을 들으면 진학 컨설팅은 이제 거의 SAT 학원만큼이나 보편화했다. 그는 딸이 11학년 되기 직전 여름방학부터 전문 컨설턴트와 계약을 맺어 성적 관리, 공부 방향, 지원 대학 선정, 에세이 작성, 재정보조 신청 등에 관한 상담을 받았다.
컨설팅 비용은 얼마나 전문적인 컨설턴트가 맡느냐에 따라 기본급이 2,500달러, 중간급은 5,000달러, 상위급은 1만 달러 선. 거기에 지원 대학이 추가될 때마다 비용도 추가된다. SAT 학원비, AP 과목별 수강비, 컨설팅 비용까지 합치면 진학준비 비용으로 몇 만 달러는 쉽게 나간다는 계산이다. 학부모로서는 허리가 휠 노릇이지만 컨설팅 받는 게 유행처럼 되면서‘우리 아이만 처지는 것 같아’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대학 진학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부모들에게 컨설팅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앞의 주부는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한다. 가주에 살면 으레 UC 진학을 목표로 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소득 가정은 주립대학 보다 사립대학에서 더 재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종합대학보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딸에게 더 맞는다는 사실 등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학 관련 온갖 정보를 발로 뛰며 확보하고, 아이의 성적과 과외활동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관리하며,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지원 대학들을 정하고 아이를 닦달해 그에 맞게 준비시키는 것이 요즘 엄마들의 모습이다. 아이의 대학진학이 엄마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명문대학과 성공적 커리어에 대한 집착, 그로 인한 과도한 교육열은 한인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시스템을 잘 아는 주류사회 젊은 부모들의 교육열은 한인부모들의 맹목적 교육열 보다 더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어려서부터 자녀를 영재 만들기 스케줄로 묶어 놓아서 진정한 의미의 유년기는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호랑이 엄마, 헬리콥터 부모들이다.
자녀교육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요즘 부모는 원예가에 비유되기도 한다. 온실에서 물, 비료, 햇빛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주면 겨울에도 딸기가 열리는 이치이다. 그런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제공해주면 자녀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로 부모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녀를 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온실 속에서 완벽한 화초가 언젠가는 온실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
엄마들의 교육열이 하늘을 찌르는 한국에서는 젊은 판사들 중에 판단을 잘 못하는 판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사법고시 치를 때까지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 관리해준 세대이다. 덕분에 판사가 되고 법조문은 잘 외우지만 재판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판결을 내리는 데 자신 없어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본 경험이 없어 판단력을 기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바라던 대학에 입학하게 한 모든 부모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녀의 인생에서 부모는 조연이지 주연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연이 너무 모든 걸 다 하면 주연은 할 일이 없어진다. 스스로 날아올라야 할 새의 날개가 퇴화할 수가 있다. 날지 못하는 새를 만들지는 말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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